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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원 필히 거쳐야 병원 갈 수 있는 네덜란드

박양명
발행날짜: 2013-12-09 06:39:56

한국과 달리 의료전달체계 정착, 1차의료가 게이트키퍼

안개가 잔잔히 내려앉은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는 'OO의원'이라고 적힌 간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띄엄띄엄 녹색 십자가 네온사인이 눈에 띌 뿐이었다. 그마저도 '약국'을 표시하는 간판이었다.

네덜란드 중심가 거리에서는 의원보다 약국 찾기가 더 쉬웠다.
병의원 간판을 눈만 돌리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우리나라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서울 강남 같이 성형 간판들이 즐비한 분위기는 없었다. 건물 전체가 각종 진료과목 의원들로 뒤덮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모범직원으로 뽑은 23명과 함께 네덜란드의 건강보험, 의료 시스템을 둘러봤다.

네덜란드 건강보험제도는 정부 개입 최소화, 시장자율경쟁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그 근간에는 소비자를 비롯한 여러 이해단체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철저한 의료전달체계…게이트키퍼를 거쳐라!

네덜란드 보건의료인력 분포를 보면 201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는 3.0명을 차지했다. 전체 의사 10명 중 4명이 일반의였다.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인구 100명당 의사는 2.0명이었고, 전체 의사 중 30% 가까이가 일반의다.

의사 인력기준은 우리나라나 네덜란드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눈에 띄게 다른 것은 네덜란드의 경우 의료전달체계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의원을 꼭 거쳐야 한다.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홈닥터라고 불리는 주치의를 먼저 찾아야 한다.

거리에서 의원 간판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 곳곳에서 의원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의사들은 입소문을 통해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의 고객을 확보해 나간다. 환자들도 한명의 의사와 관계를 맺으면 가족 전체가 주치의와 관계를 맺어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치의제' 도입은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있는 현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팽배하다.

2011년에는 정부가 만성질환관리제 실시계획을 발표하면서 '선택의원제' 문제가 나왔다. 의료계는 선택의원제가 주치의제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며 거세게 반발 했다.

의료인력 양성이나 의료소비문화 등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주치의제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의협 이재호 정책이사는 한 토론회를 통해 "주치의제도는 현재의 환경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1차의료 강화라는 단순한 논리로 보면 안되고 제도 시행이 가져올 의료환경 변화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대한가정의학회는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으로 주치의제 도입을 유일하게 주장해오고 있다.

네덜란드 현지 가이드를 맡은 한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할 때는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홈닥터의 처방이 있어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과정으로 가기까지의 절차가 힘들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의료를 경험했으면 분명 답답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06년 신건강보험법 정부 개입 최소·시장자유경쟁

네덜란드 건강보험은 2006년부터 '신건강보험법'을 도입하면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경쟁체제로 전환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이 보험은 민간보험회사가 운영한다.

정부는 필수적으로 국민이 가입해야 할 보험의 범위을 정하고 민간보험회사가 직접 공급자 측인 병원과 계약을 하는 식이다.

가입자는 매년 민간보험회사를 선택해 변경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험회사들은 11월 19일부터 다음해 1월 31일까지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가입자들이 보험회사를 바꿀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는 더 많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경쟁을 함으로써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보험회사는 정부가 정한 ▲GP진료, 전문의 진료, 병원 이용, 의약품 ▲18세 미만 어린이 치과 진료 ▲특수 치과진료 및 의치 ▲출산과 관련한 진료, 산부인과 진료 ▲앰뷸런스 및 휠체어 택시 이용 등 ▲정신가 치료, 언어장애 치료 등 ▲영양섭취와 식이요법 상담 등에 대해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새로운 보험상품이 들어있는 '보충형 보험'을 개발해 가입자를 확보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보험사간 경쟁이 일어난다.

네덜란드 최대 보험회사
네덜란드 최대 민간보험회사인 아흐메아(ACHMEA)의 알렉산더 스톨츠 전략자문위원은 "2006년 이후 소수 회사가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외국기업이 들어올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자료를 기준으로 네덜란드 국민의 90% 이상은 4개 보험회사에 집중돼 있다. 이중 ACHMEA 점유율이 32%로 가장 컸다.

알렉산더 자문위원은 과독점의 우려에 대해 "한 회사가 시장점유율 32.5% 이상 차지하는 것을 못하도록 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가계약은 보험사와 공급자가 협상

네덜란드 신건강보험법은 이처럼 민간보험회사에게 막대한 권한을 주고 있다.

또 다른 주요 내용은 민간보험회사와 의료제공자가 수가계약을 하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병원을 선택할 수도 있고 병원은 여러 회사와 계약을 할 수도 있다. 보험사는 병원의 특정 진료과목을 선택해 계약할 수 있다.

보험사와 일반의는 환자 방문당 진료비 등울 계약한다. 병원과는 대기시간 관련 비용, 사후서비스 내용, 수가 등을 협의한다.

알렉산더 스톨츠 전략자문위원
알렉산더 자문위원은 "예를 들어 한 지역에 3개 병원이 있다고 치면, 세 곳과 모두 계약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병원끼리도 경쟁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만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에서 갖고 있는 기준을 갖고 병원을 선택하기 때문에 질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에 따르면 수가 계약은 각각 행위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진료, 진단, 수술을 패키지로 묶어 해마다 가격 협상을 진행한다.

진료행위의 수가와 약가는 상한 가격을 국가가 정하고 있다.

보험사는 정해진 가격의 20% 범위에서 병원과 협상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험회사가 병원을 선택할 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은 소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건부, 중앙은행, 금융감독원 등이 보험회사의 공정거래를 감시한다.

네덜란드의 이같은 의료제도 개혁은 20여년에 걸쳐서 사회적 합의를 찾은 결과다.

2008년 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외국의 보건의료체계와 의로보장제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건강보험개혁은 1986년부터 시작된 데커개혁을 바탕으로 20여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찾으며 진행됐다.

연구진은 "여야 정권이 교체돼도 건강보험제도 개혁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추진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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