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 전 회원 온라인 투표를 통해 승부수를 띄웠다.
총파업 재진행 안건 상정을 불허한 대의원회를 직접 겨냥해 대의원총회 결정에 따를 것인지 전체 회원 투표를 다시 거칠지 묻는 항목까지 포함시켰다.
반면 대의원회는 정관에도 없는 전체 투표를 통해 지속적인 대의원회 무력화를 시도할 경우 '정관 위배'로 사법처리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총파업을 둘러싸고 노환규 회장과 대의원회가 맞서고 있는 상황을 짚어봤다.
칼 빼든 노환규 회장 "대의원회 개혁해야"
의협이 온라인 투표 사이트(vote.kma.org)를 열고 전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진행 여부 등 6개 문항에 대한 설문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의원총회의 의결 구조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항목도 포함돼 있다는 것.
의협은 대의원총회·회원투표에서 총파업이 결정될 경우 혹은 대의원총회에서 총파업이 부결되는 경우 '대의원총회 결정'에 따를지 아니면 전체 회원 투표를 거칠지 물었다.
또 대의원총회에서 총파업 논의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 전체 회원 투표를 거칠지, 투표없이 추이를 지켜볼 것인지 물어, 총파업 재진행 안건 상정 불가를 결정한 대의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를 두고 노 회장이 온라인 투표를 통해 대의원회 개혁에 칼을 빼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의원회의 인준 시스템이 총파업 진행과 같은 긴급한 사안 등의 동력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앞서 SNS를 통해 "대의원 의장은 줄곧 대정부 투쟁을 반대해 왔기 때문에 임시총회에서 총파업 재추진을 끝내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경우를 대비해 전체 회원투표를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고의 의결 기구인 대의원회의 총파업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온라인 투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회무 결정을 하겠다는 것.
실제 노 회장은 "대의원회를 시도의사회에서 장악함으로써 지역의사회장들이 합심하면 회장을 탄핵할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회장이 회원에 의해 탄핵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회사의 부장들이 모여 사장을 탄핵할 수 있다면 사장의 지시를 따르는 부장은 없기 때문에 대의원총회 때마다 시도의사회장과 임원들이 대의원석에 앉는 일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다.
노 회장은 "최근 한의사협회는 정관개정을 통해 회원 중심의 협회로 탈바꿈시켰다"는 언급 역시 대의원회 의결 구조를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 회무 방향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로의 개편을 암시하고 있다.
대의원회 "인기 투표 중단하고 적법한 절차 거쳐라"
만일 노 회장이 오는 30일 임시대의원 총회에서 이런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대의원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파국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의원회는 노 회장이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인기 투표'의 방식으로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다며 잔뜩 벼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임총에서는 대정부 투쟁 과정 중 비대위의 구성과 운영, 재정 사용에 대해 점검한다는 계획이어서 노 회장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모 대의원회 운영위원은 "전 회원 투표를 통해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관에 없는 내용"이라면서 "이는 분명한 정관 위배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투표를 통해 대의원회의 의결 구조를 무시하는 것은 의협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면서 "노환규 회장의 1인 기업이 아닌 이상 적법한 절차는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만일 노 회장이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대의원총회 의결 결과를 부정하거나 일방적으로 총파업을 추진한다면 '정관 위배'를 이유로 불신임을 상정하겠다"면서 "이마저도 거부하면 사법부에 판단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불신임안이라는 역풍도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해 노 회장의 불신임안 상정을 추진했던 조행식 대의원은 "대의원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회무를 추진하려는 노 회장이 내부 분란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이번 임총에서는 불신임안 상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음 회기에 불신임안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노 회장이 대의원회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는 임총에서 불어닥칠 투쟁 관련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면서 "특히 원격진료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 입법 과정이란 법 개정안의 국회 의결 전까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국회 입법 과정에서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먼저 시행한다"고 합의한 것은 원격진료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를 사실상 용인해준 셈이라는 것.
그는 "임총 현장에서 다른 대의원들에게 불신임안 설명 자료와 동의서를 받을 계획"이라면서 "노 회장의 독단적 스타일이나 집단 휴진일에 노래방을 간 사건 등으로 피로감을 느끼는 대의원들이 많아 불신임 지지도 한층 강해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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