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에 시작된 의약분업이 시행 14년이 되었다. 정부는 아직 사후 평가를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분업효과라고 선전하였던 효과들은 나타나지 않으며 보험료 인상 등 의사협회가 제기했던 문제들만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칼럼의 글을 통해 의약분업 시행 14년이 지나며 어떤 문제들이 드러났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지 말해보려 한다.
지난 2000년 복지부는 의약분업 도입 시 국민에게 ▲국민 의료비 부담 감소 ▲환자의 알권리 충족 ▲약사의 전문성 활용 ▲임의조제 근절 ▲의약품(항생제, 주사제) 오남용 방지 ▲의약품 유통구조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고 선전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안 의약분업을 반대하며 ▲국민 의료비 부담 급증 ▲환자 의료 이용 불편 ▲조제료 및 약제비 지출 급증 ▲의사의 자율성 침해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의약분업 시행 14년 동안 나타난 현상
국민 의료비 부담 급증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전, 진료비총액이 매년 14.2%정도 증가했다. 그러다가 의약분업이 시행되자 첫해인 2001년의 진료비총액이 분업직전인 1999년에 비해 54.8%나 급증하였다.[도표1]
분업 시행 10년째와 13년째의 진료비총액이 1999년에 비해 각 3.78배와 4.42배로 늘어난 것으로 보아 의약분업 이후 해가 갈수록 진료비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진료비 지출이 급증하니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입자 일인당 월보험료가 분업 시행 10년 만에 3배 이상 올랐다.[도표2]
건강보험재정 국고지원금도 2000년 1조5,527억원에서 2013년에 5조7,993억원으로 3배 늘어났으니 국민들의 건강보험관련 부담금이 직·간접적으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도입하면서 국민들에게 보험료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선전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2014년도 건강보험료도 대폭 올려서 국민 일인당 월 12만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진료비 지출이 급증한 것은 보장성확대로 인한 지출 증가와 고령사회 만성질환자의 증가도 한 몫을 하였지만 의약분업 이후 재정지출이 갑자기 급증한 것으로 보아 의약분업이 재정부담의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소외되는 환자의 알권리
정부가 의약분업을 도입하면서 환자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의약분업이 필요하다고 선전하였다. 하지만 의약분업 이후 환자들에게 전달된 환자보관용 처방전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처방약제의 이름을 알게 된다고 환자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은 용량과 처방된 목적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기도 하여 환자가 처방내역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약분업을 시작하며 약사가 복약지도로 환자에게 설명하게끔 되었다. 하지만 2008년 대전 YMCA의 조사결과에서 드러났지만 약사들의 복약지도는 매우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복잡하고 다양한 처방의약품을 설명하는데 채1분도 걸리지 않았고 환자의 만족도 역시 13%에 그쳤을 뿐이었다.
약사들의 복약지도로 환자의 알권리가 충족될 것이라던 정부의 선전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의약분업을 하면 환자의 알권리가 충족된다는 정부의 선전은 탁상공론이었다.
의약분업에 활용되지 못하는 약사의 전문성
정부는 의약분업으로 처방전을 이중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분업의 큰 장점이라고 홍보했다. 약사가 병용금기, 연령금기, 임산부금기, 용량점검 등을 점검하여 처방한 의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구축한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나는 의약분업 실시 이후 14년 동안 매일 적지 않은 원외처방전을 발급하였으나 금기나 제한의 문제로 약사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없다.
동료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들도 조제과정에 약사로부터 금기나 점검에 관련된 내용으로 질문이나 설명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DUR시스템(처방조제 점검시스템)이 돌아가면서 의약분업으로 걸러지지 않던 금기나 점검을 DUR 시스템에서 걸러주는 현실이다. 의약분업에서 약사의 전문성은 전혀 활용되지 못한 것이다.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불법행위
2012년 M방송국에서 방송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다수의 약국이 의약분업을 위반하여 조제하는 것을 적발하여 방영하였다. 정부가 의약분업을 도입하며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공염불이었던 것이다.
약사로부터 "간이 좋지 않다. 신장이 좋지 않다. 위궤양이다, 혈액순환이 안 된다." 등의 말을 듣고 약을 구입하여 오랫동안 복용하다가 상황이 악화되어 비로소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약사법 제48조 '개봉 판매 금지'에 보면 봉함한 의약품의 용기나 포장을 개봉하여 판매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였지만 예외상황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개봉판매 하는 약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파파라치나 환자가 고발하지 않으면 단속할 수 없는 불법행위를 정부가 의약분업 시행으로 근절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현실성 없는 약속이었다.
의약분업과 무관한 의약품(항생제, 주사제)처방 감소
정부는 의약분업의 성과로 항생제 처방이 감소되었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다. 분업으로 약사들이 처방전 없이 판매하던 항생제로 인한 오남용은 줄었다. 하지만 항생제가 필요한 질병에 의사가 처방하는 항생제는 의약분업을 시행한다고 감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 이후 실재 의사들의 항생제 처방은 줄었다. 그것은 의약분업의 효과가 아니었다.
심사평가원이 항생제 인정 급여기준을 대폭 축소시켜 항생제나 주사제 처방을 인위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한편 심사기준으로 막은 항생제와 주사제 처방 이외 처방의 경우 의약분업 이후 처방 당 의약품의 품목 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보아 의약분업으로 의약품 오남용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실효성이 없는 발상이었다.
급증한 약제비 지출
의약분업 시행이후 처방의약품의 약제비지출이 크게 늘었다. 분업 이전에 개업의들은 약제를 구입해야 하는 자금부담 때문에 고가약제 처방을 많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시작되고 처방의약품이 공개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의사들에게 약제구입비 부담이 사라졌고 처방전이 공개되며 환자들에게 비싼 약제가 좋은 약이라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자연적으로 고가약제 처방이 점점 늘어났고 약제비 지출도 급증했다.
건강보험 약제비지출이 2000년에 1조2천억 원이던 것이 분업 10년 만에 13조원으로 급증하여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제약회사들은 분업 10년 만에 매출이 10배 이상 늘어서 대기업으로 커졌다. 의약분업은 필연적으로 약제비지출이 급증하는 제도이다.
독일은 의약분업으로 약제비가 급증하는 것을 막으려고 연간 약제비지출 한도를 정하고 약제비지출이 한도를 초과하면 정부가 의사 단체에 주는 지원금에서 약제비 초과분을 차감하여 지급하는 방식으로 고가약제 처방을 줄이려 노력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낮은 보험률로 운영되는 의료보험에서는 약제비부담 때문에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힘든 것이다. (하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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