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의사-한의사들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물과 기름' 사이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양측을 비방하고 폄하하기 바쁘다.
더구나 최근에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천연물신약 사용 등을 넘어 치매등급판정 한의사 참여를 놓고 감정싸움까지 벌이면서 의사-한의사 간의 갈등이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의사-한의사 간 서로 상생하며 함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발전해 나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메디칼타임즈는 이에 따라 의사-한의사 면허를 동시에 보유한 복수면허자들을 만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의학과 한의학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다만, 인터뷰를 진행한 복수면허의사들이 실명 공개를 거부해 익명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한의대 교수가 한의사를 무시하는 세상
의대를 나와 10년 동안 개인 의원을 운영하던 L원장.
그는 현대의학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다 우연히 한의학에서 이를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한의대를 진학하게 됐다.
"개원해서 의원을 오래 해왔는데 현대의학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많더라. 한의학에서는 문제가 된 질환을 침으로 치료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무시하기에는 크지는 않지만 치료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 한의대를 진학했다."
그러나 L원장의 이러한 학문적 기대는 한의대를 진학하자마자 곧바로 허무함으로 돌아왔다.
L원장은 "한의대 수업을 듣는데 교수가 한의학에서 '혈허'를 현대의학의 빈혈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하더라. 그래서 교수에게 혈허가 왜 빈혈이냐고 질문하니 한참을 생각하다 답을 못했다"며 "알고 보니 혈허는 한의학적으로 우리의 피 속에 기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한의학은 이를 현대화해 설명할 수 없다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것이 바로 한의학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야구에서의 아웃과 축구에서의 아웃이 서로 다른 개념인 것처럼 현대의학과 한의학은 서로 개념부터 다르다"며 "그런데 일부 한의대 교수들은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마치 같은 개념인 냥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L원장이 더 놀랐던 것은 한의대 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무시 한다는 것.
L원장은 "모 한의대 재활의학과 교수는 자신이 한의사면서 한의사들이 무지하다고 여기고 한의학적 용어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서양용어만 사용한다”며 “이는 한의사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이것이 현재 한의학의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복수면허자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현대의료기기'
그렇다면 의사-한의사들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바라 보는 복수면허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간단히 말하면 이들도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즉, 의대 졸업 후 한의대를 나온 복수면허자와 한의대를 졸업 후 다시 의대를 진학했던 복수면허자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L원장과 마찬가지로 의대를 졸업한 뒤 한의대를 나와 개원한 P원장은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P원장은 "초음파 등 현대의료기기는 현대의학적인 소견을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며 "현대의학은 의료기기를 개발해 나가면서 그에 따라 현대의학과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의학도 현대의학과 마찬가지로 의료기기의 결과를 가지고 한의학적 진단과 연관성이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며 "현재 한의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황당한 내용들"이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한의대를 졸업해 다시 의대를 나와 현재는 K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 M교수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교수는 "의료기기는 현대문명의 이익"이라며 "한의사들도 이같은 현대문명의 이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에 한의학 교과과정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임상병리학이나 영상의학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 못하게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학 사기면 증명하라" "음양오행 전부 아냐"
그러나 복수면허자들은 현안을 가지고 서로 비방하기에 앞서 서로의 학문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L원장은 "의사의 시각에서 한의학을 바로 보면 정말 이상한 것들이 많다"며 "그래서 한의사를 하는 것이다. 한의학이 진짜 인지 아닌지 가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의학이 가짜라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은 증명이 안 된 다른 치료법을 보면 좌시할 수 없다면서 이를 '사기'라고 폄하한다"며 "그렇다면 해당 학문이 왜 사기인지를 증명해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의사들은 자기주장만을 늘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한의학적으로 인정된 분야는 의사들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의견도 있었다.
M교수는 "한의사들이 의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학문을 매도하거나 무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며 "한의사들도 의료만큼은 현대의학이 주된 학문인 것은 다 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을 전통의학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의학이 음양오행이 기본 바탕이 된다고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현재는 침술 이외에는 현대의학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데 한의학은 오랜 경험으로 이뤄진 학문으로 의사들은 이러한 경험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P원장은 그동안 복수면허자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힘든 점을 털어놨다.
P원장은 "의대를 나와 한의대를 가는 사람들은 겪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의대를 나와 의대를 진학한 학생들은 자신이 한의대를 나왔다는 점을 밝히기 꺼려한다"며 "이는 혹여나 의대 교수들한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복수면허자들은 의사와 한의사 양쪽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며 "다들 의사나 한의사 생활을 부적응했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셈이다. 한마디로 회색분자라고 할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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