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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응급실 체험기

배고은
발행날짜: 2014-07-07 06:03:09

경희대 의전원 3학년 배고은 씨

헛,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아프다. 본능적으로 자리에 주저앉아 발을 움켜쥐었다. 비명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파 정신이 아찔하다. 어느 정도냐면, 불에 덴 발에 고춧가루가 들어갔는데 모르고 무가당 레몬 탄산수를 쏟은 정도의 아픔이랄까. 의학도답게 고통의 단계인 NRS(Numeric Rating Scale)로 표현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한 7점 정도가 되겠다.

그렇게 혼자 낑낑대고 있는데 동기 오빠가 웃으면서 '야, 놀지 말고 일해'라고 말했을 땐 정말 한대 쳐버리고 싶었다. 발 다쳤다고 나지막하게 으르렁 거리자 이내 내가 옮기던 책상이 넘어지면서 다쳤다는 것을 알고 미안해했지만, 어쨌든 이성을 놓아버리고 그간 이미지를 날려버릴 정도로 정말 너무 아프다.

뒤늦게 상황을 안 교실에 있던 사람들이 한달음에 달려와서 신발을 벗어보란다. '발등은 부러지기 쉽다던데', 정형외과 실습을 이미 마친 선배들의 말에 신빙성이 마구 생김과 동시에 무섭다. 병원은 가기 싫은데. 양말을 빼꼼, 벗어보니 새빨갛게 부어 있는데다가 책상 모양으로 파랗게 핏줄이 터져있다. 육안으로도 이건 큰일이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 병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금이 간 것 같다. 걸을만해서 괜찮은 건가 했는데, 이미 놀란 마음에 신콥(syncope)이 한차례 왔다갔다. 종이처럼 하얘진 얼굴을 보며 괜찮지 않구나 싶어서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필 휴일이라 외래는 안 되고 응급실은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부랴부랴 왕십리 근처 전문병원으로 가려던 찰나, 병원에 근무 중이신 선배님이 전화로 지금 응급실 괜찮으니 빨리 오라고 하신다. 오, 럭키! 덕분에 응급실인 듯 응급실 아닌 응급실인 럭셔리 진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 환자로 가려니, 뭔가 이상하다. 만날 정문에 들어서서 지하의 실습 학생 사물함으로 가다가, 이번에는 응급실 문으로 직접 들어서는 데 뭔가 싱숭생숭하다. 괜히 작아지는 느낌에다가 그렇게 많이 다니던 길도 헷갈린다.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이게 환자의 마음인가 싶었다가도 응급실에 들어가자 마주친 인턴선생님과 레지던트선생님께 '학생임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픈 발보다는 생뚱맞은 고민이 앞선다.

여차저차 어정쩡하게 인사드리고 접수를 하자 곧이어 당직 레지던트 선생님이 오셔서 안내해주셨다. "일단 침대에 누워서 신발 좀 벗어주세요." "네." 환자 반, 학생 반의 위치에서 말 잘 듣는 환자에 빙의하여 조신하게 침대에 누웠다. 아프긴 했지만 physical exam 상으로는 크게 골절이 의심되는 바가 없고, 다음은 x-ray를 찍을 차례다. 같이 온 선배가 어디선가 휠체어를 가져오더니 곧바로 x-ray방으로 향했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위치를 설명해주시기도 전에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서 촬영하러 가는 게 아픈데도 웃기다.

x-ray도 알아서 척척, 잘 나오게 자세를 취하면서 찍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가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이 보호자를 찾으신다. 영상이 도착했나보다. 레지던트 선생님과 보호자 신분인 선배들이 소곤소곤 영상에 대해 토론하는 광경이 재밌기도 하고, 나도 보고 싶다. 언제 또 내가 이렇게 영상 판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보러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곧 영상 판독을 끝내신 선생님들이 오셔서 괜찮은 것 같으니 우선 퇴원하고 혹시 통증이 계속되면 다시 오라신다. 다시 환자의 마음이 되어 아픈 건 둘째 치고 괜찮다니 정말 다행이다.

선배가 챙겨준 아이스 팩을 발에 대고 집에 돌아와 누워 오늘의 사건을 눈앞에 그렸다. 실습생이 아닌, 환자의 입장으로 일터에 가보니 재밌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한없이 친근했던 선배들이 병원에서는 완전 다른 모습인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척척 진행되는 응급실 진료 과정을 얼떨결에 체험해보니 내 발은 다쳤지만 응급실 실습을 미리, 게다가 생생하게 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퉁퉁한 발을 조심스레 얼음찜질하면서 나도 언젠가 선배들처럼 멋있게 일하겠지, 싶은 상상에 푼수 같이 약간 설렌다. 아무튼 학생으로, 환자로, 리얼 더블 응급실 체험 학습을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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