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3억 5000만 명 인구가 한 자리에 모인 듯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전시장 관람객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다국적기업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CT·MRI를 국산화한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을 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중국 상해 전시컨벤션센터(National Exhibition and Convention Center Shanghai·NECC)에서 열린 ‘제73회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hina International Medical Equipment Fair·CMEF Spring 2015)는 중국 의료기기산업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총 50만㎡에 달하는 전 세계 최대 규모 단일전시장 NECC 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중국 업체들의 가파르게 발전하는 기술력이었다.
과거 의료기기시장을 개방하되 ‘GPS’(GE·PHILIPS·SIEMENS)와 같은 다국적기업들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중국은 오랜 기술축적과 인재 영입을 기반으로 전자내시경부터 CT·MRI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진단영상기기를 국산화했다.
CT·MRI는 둘째 치고 변변한 내시경조차 만들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중국 의료기기의 한국시장 공략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CMEF 현장에서 만난 중국 로컬업체 중 일부는 대리점 체결 등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수순을 밝고 있었다.
중국 의료기기가 가격경쟁력만을 앞세운 낮은 기술력이 접목된 ‘저부가가치’ 제품이라는 철지난 인식과 중국 의료기기산업이 한국보다 뒤쳐져 있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자 불필요한 자만이다.
전폭적인 정부 지원 아래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산업의 ‘바로미터’ CMEF Spring 2015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시장 공략을 준비하는 중국 업체들의 무서운 성장잠재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CMEF Spring 2015는 중국 의료기기가 ‘Made In China’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Created in China’ 시대를 연 전시회로 평가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26개국·6000개 업체 참여…역대 최다 관람객 전망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심천(Shenzhen)에서 열린 개최지역을 올해 상해(Shanghai)로 리로케이션 한 CMEF Spring 2015는 상해 중심부 홍차오(Hongqioa)구에 위치한 NECC에서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개최됐다.
개최지 상해는 중국 상업·금융 최대 경제도시이자 중국 의료기기업체 중 30%에 해당하는 약 5000개 업체가 밀집한 중국 의료기기 거점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 CMEF는 ▲APICHINA(원료의약품전시회) ▲PHARMCHINA(종합의약품전시회) 2개 전시회와 통합해 ‘tHIS’(The Health Industry Summit)이란 이름으로 동시에 열려 의료기기업체는 물론 ▲병의원 ▲제약 관련업체 ▲보건위생기관 등에서 사상 최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상해 현지 주민에 따르면, CMEF가 열리기 1주일 전 상해에는 이미 10만 명의 전시회 관련 인구가 유입됐다.
이는 2014년 기준 경기도 동두천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수치.
주최 측이 집계 중이지만 CMEF Spring 2015는 역대 최다 참가업체·관람객 기록을 모조리 새롭게 쓸 것으로 기대된다.
네잎클로버 모양의 NECC 중 CMEF는 1·2층으로 이뤄진 5·6·7·8홀에서 진행됐다.
메인 홀에 해당하는 7.2·8.2홀(Imaging관)에는 ▲Mindray ▲TCL ▲UNITED IMAGING ▲yuwell 등 중국 로컬기업과 GE헬스케어·PHILIPS·SIEMENS 등 다국적기업들이 진단영상기기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또 6.2홀에는 한국을 비롯한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일본 등 국가관(Pavillon)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체외진단기기(IVD) 업체들이 부스를 채웠다.
이밖에 6.1홀에서 8.2홀에는 중국 심천, 북경, 상해, 광동성, 산서성 등 23개성 업체들이 참가해 진단영상기기, 생체신호기기, 수술용 재료, 소모품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전시회 주최사 ‘리드 시노팜’(Reed Sinopharm)은 CMEF Spring 2015에 자국업체를 비롯한 한국,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6개국·600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약 4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추산했다.
기술축적·정책적 지원…다국적기업과 기술격차 좁혀
중국은 과거 자국 의료기기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다국적기업들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정책은 중국 업체들의 기술축적을 통한 의료기기 국산화 속도를 빠르게 앞당겼다.
CMEF에서 만난 중국 의료기기업체들은 GPS 출신 인력들을 대거 채용해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례로 한국은 삼성메디슨·알피니언 2개 업체만이 생산하는 ‘초음파진단기’의 경우 중국은 마인드레이·SonoScape와 같은 글로벌기업을 비롯해 약 30개 업체가 넘는다.
한국에선 제조사조차 없는 CT·MRI는 어떨까.
CEMF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CT·MRI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CT·MRI를 생산하는 로컬업체 관계자는 “중국 업체 3곳 정도가 병원에 CT를 공급하고 있다”며 “MRI는 20곳이 넘으며, 이중 6~7곳이 초전도 MRI를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필두로 정부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 정책 또한 로컬업체들의 규모를 키우고 기술력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는 원동력.
로컬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성(省)·시(市)·현(縣)급 의료기관들은 자국 의료기기를 우선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8월 상해 위생국은 대형병원들의 고가 진단영상장비 도입 시 첫 번째의 경우 다국적기업 장비 구매를 허용하되 2번째부터 자국 제품을 구입토록 장려하는 방안을 중앙정부에 건의했을 정도다.
2014년 6월 기준 중국 내 의료서비스기관은 약 98만 개.
중국 업체들은 자국시장에서 충분한 수요가 이뤄지는 만큼 풍부한 임상정보를 기반으로 빠르게 장비 성능과 기능을 개선하고, 기술력 향상을 이끌어내면서 다국적기업과의 기술격차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중국 병원이 자국 ‘CT·MRI’를 사용하는 이유
다국적기업들로부터 전수받은 기술과 정부 정책 지원에 힘입어 CT·MRI와 같은 진단영상기기 국산화에 성공한 중국 의료기기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로컬업체를 찾았다.
CMEF Spring 2015에서 ‘UNITED IMAGING’ 부스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부스 규모도 놀라웠지만 이 회사가 출품한 장비들을 보면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3월 민간자본과 정부 투자를 기반으로 설립한 UNITED IMAGING은 CMEF에서 ▲DR ▲PACS ▲CT ▲MRI ▲PET-CT ▲PET-MR를 선보였다.
이중 CT·MRI는 GPS 하이엔드급 장비보다 떨어지지만 미들레인지급만 놓고 보면 제품 사양과 디자인 모두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설립한 지 4년에 불과한 이 회사는 창립멤버 대부분이 GPS를 비롯한 도시바·히타치 출신으로 구성돼있다.
또 회사 설립 초기부터 대형병원 중심의 진단영상기기 개발을 목표로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부스에서 만난 루 쯔붜(Lu Zhibo) 제품 매니저는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영업마케팅을 시작해 현재까지 병원에 장비 약 100대를 공급했다”며 “100대 중 50%는 DR이고, 나머지 50%를 CT·MRI·PET-CT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CT·MRI시장은 GPS가 70%, 나머지 30%를 중국 로컬업체가 차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기술성장 속도가 빠르고, 정부 또한 국산 의료기기 사용을 장려하면서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병원들의 외산 장비 쏠림현상이 심할뿐더러 국산 CT·MRI 자체가 없는 한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중국 병원들이 GPS가 아닌 자국 의료기기를 사용할까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
“병원들이 왜 자국 CT·MRI를 사용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병원에서 CT·MRI를 사용하는 빈도가 굉장히 높다. 로컬업체들은 중국 의사와 병원 환경에 맞는 사용편의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제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특히 자국 CT·MRI가 다국적기업 미들레인지·하이엔드급 장비와 동등한 성능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장비 도입 전·후 원활한 사용법 교육과 합리적인 AS 비용도 중요한 이유라고 루 쯔붜 매니저는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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