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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신종플루의 교훈과 '메르스'

허대석 교수
발행날짜: 2015-06-08 11:58:13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허대석 교수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일으키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며 2009년 세계적 공포를 유발했던 신종플루의 기억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매일 바이러스 감염 확진환자수와 사망자수를 발표하였고 언론이 이를 집중보도하면서 국민들은 수개월간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된 후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신종플루와 연관된 사망자 수는 1년간 263명으로 집계되었고, 평소에 계절독감으로 인해 매년 사망했던 환자 수 2,369명(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05-8년도 3년간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분석)과 비교할 때 신종플루가 일반적인 계절독감보다 더 위험하다는 근거는 없었다.

2010년 이후에도 신종플루(H1N1)와 연관하여 발생한 사망자가 있었으나, 2009년과 달리 정부가 별도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신종플루에 감염되어 사망한 환자가 처음 확인된 2009년 8월15일 이후 연말까지 5개월 간 공식적으로 확진된 환자가 740,835명으로, 1일 평균 5,000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매일 5명의 환자가 사망하였다. 메르스는 20여일 동안 누적 확진자수 87명, 사망자수 5명이 집계되고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에서 메르스보다 더 심각한 질환은 '결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OECD 34개국가중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 뿐만 아니라, 다제 내성결핵 환자 비율이 단연 1등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2013년 36,089명의 환자가 진단되었고, 1년간 2,466명이 사망하였다. 결핵은 공기감염으로 전파되는 대표적인 전염병으로 매일 100명이 결핵에 새로 감염되고 6-7명이 사망하고 있다. 전염성이 있는 결핵균 보균자가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이동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된 공중보건 문제에서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계기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심이 유발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2008년에 발생한 소고기파동도 1996년 이후 전 세계 사망자수가 200여명에 불과한 광우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

메르스가 한국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 또, 앞으로도 질병을 유발하는 새로운 병원균은 끊임없이 발견될 것이고 세계화시대에 여러 경로로 우리사회에 유입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때마다 지금과 같은 혼란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국제보건기구나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불확실성의 문제를 다룰 때는 risk communication의 원칙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이슈에 대해 국민들의 불필요한 공포심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다.

2009년 미국에서만 6,000만명이 신종플루로 확진되었고 이중 12,469명이 사망했다고 최종 집계되었다. 그러나 신종플루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매년 계절독감으로 사망한 환자수(연평균 23,607명)와 신종플루로 인해 증가한 사망자수를 전문가가 비교분석한 자료를 웹사이트에 매일 공개하였을 뿐 우리나라처럼 모든 언론매체가 앞 다투어 사망자수와 확진자의 이동경로까지 발표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보다 불필요한 불안감만 더 조성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아 위기를 차분히 관리해나가는 성숙한 행정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에 정부는 이미 '양치기소년'처럼 신뢰를 잃고 있어 안타깝다.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관된 발표와 정책수행이 필요한데 학교휴교 문제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간 의견충돌이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사이에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위험을 과장하여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가 국민들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더 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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