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식 기자| 왕귀뚜라미 기르기가 노인들의 우울증과 인지 기능 개선을 통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결과를 두고 노인우울증 개선보다는 곤충 산업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왕귀뚜라미 기르기가 노인의 정신건강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정신심리 검사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등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세계 최초로 확인하고 이를 관련 저명 학술지(Gerontology)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왕귀뚜라미 돌보기 프로그램'를 개발한 농촌진흥청은 경북대학교병원과 함께 심리적 취약 계층인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적용해 귀뚜라미가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및 의학적 측면의 변화를 조사했다.
농촌진흥청과 경북대병원애 따르면 왕귀뚜라미를 돌본 체험군은 비체험군에 비해 우울증 지수가 3.9에서 3.1로 크게 낮아진 반면, 인지 기능 지수는 26.7점에서 28.1점으로 높아졌고, 정신적 삶의 질(건강관련) 지수 또한 73.4점에서 78.3점으로 상승했다.
자기공명영상(fMRI) 검사에서도 체험군은 비체험군에 비해 집중에 관여하는 뇌 부분 활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영상촬영 중 수행하는 임무의 정확도가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두고 노인 우울증 개선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지만 정작 산업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보도자료에는 이번 연구성과가 산업적으로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 강조돼 있다.
보도자료에서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강필돈 과장은 "다양한 곤충을 여러 연령층에 확대 적용해 곤충의 심리 치유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며, 이번 성과는 곤충 관련 산업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곤충을 통한 심리치유를 극대화하겠다는 부분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심리치유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당연히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약물요법 등이 이뤄져야 한다. 농촌진흥청의 발표는 곤충 산업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의 A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도 "동물 매개 치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동물만 기른다고 해서 치료적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당연히 병원을 찾아 의사를 만난 후 치료를 해야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우울증은 초기 단계의 적극적인 관리가 중요하다"며 "귀뚜라미 등 곤충이나 동물에 의존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지는 모르지만 이로 인해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노인이 있다고 할 때 그의 상태가 귀뚜라미로 개선될 것인지 치료가 필요한 단계인지 누가 판단해야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노만희 회장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개념의 아니지만 개선에 도움은 된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전문가적 치료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노만희 회장은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위해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한 상담 및 약물치료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후 귀뚜라미를 키우던 강아지를 키워야 도움이 되는 것이지 선행치료 없이 우울증이 개선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연구결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노인 우울증의 원인은 노령화에 따른 상실감과 고립감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농촌진흥청은 이번 연구가 '건강한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실시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노만희 회장은 "인구 증가와 수명의 연장에 따라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등의 복합적 요인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노인 우울증 증가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은혜병원 정신과 유홍섭 과장도 "노인 우울증은 생물학적 원인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고립과 함께, 은퇴 이후 상실감 등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국내 노인 우울증 환자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유병률도 높은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의 우울증 환자수는 2004년 8만 9040명에서 2009년 14만 7721명으로 5년간 1.7배 증가했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가 정신질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국내 주요우울장애의 유병율은 3.1%인데 반해 65세 이상 노년기 우울증의 유병율은 5~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노년기에는 신체 건강상의 문제, 사회 환경적 요인 등으로 우울증에 노출되기 쉬운 시기인데 반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정신건강 관련 의료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들은 노인 정신건강 예방과 증진에 대한 정부의 박약한 의지를 지적하고 있다.
노만희 회장은 "몇해전 우울증 환자도 많고 자살도 많아지는 등의 이유로 복지부는 전 국민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했었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정신질환의 정의를 바꾸고 환자의 인권을 개선한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안도 발의했다"며 "그러나 그 법안은 지금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지나치게 산업화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회장은 "국민 정신겅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노인층에 대한 신경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며 "그러나 국가는 국민 정신건강이 중요하다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경제와 일자리 등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노인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라고 떠들지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의사만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지원해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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