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병원 안과 의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23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늦은 오후에 인터뷰를 한다는 것에 다소 부담을 갖고 있던 터라 가능하면 이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는다니 어쩌랴.
더이상 고집을 부리다가는 가까스로 잡아놓은 인터뷰 약속마져 파기하자고 나설까봐 서둘러 이것저것 챙겨들고 지는 해를 등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을 내준것만 해도 감지덕지지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병원 7층에 있는 의국실 문을 두드렸다.
의국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가운, 언제 빨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더러워진 침대 시트, 그리고 이곳저곳에 빽빽히 쌓여있는 원서들이 기자를 반긴다. 아! 전공의 생활의 고달픔이여.
김안과병원 안과 의국엔 모두 9명의 전공의가 있다. 비교적 덩치가 큰 의국인 셈이다. 치프를 맡고 있는 손대현 전공의를 비롯해 길현정, 최문정, 이준영 전공의가 3년차고 민성희 박원호 함이룸 전공의가 2년차, 강수연, 김정복, 배승환 전공의가 1년차 막내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 참여한 의국원은 5명. 일부는 수술실에 또 일부는 다른 업무를 보느라 참석하지 못했단다.
"일에 치여 살아요. 안과 전문병원이다 보니 환자가 끊임없이 밀어닥치고 응급환자도 다른 병원에 비해 많은 편이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요" 치프를 맡고 있는 손대현 전공의의 말이다.
안과질환에선 일가를 이룬 병원의 명성를 뒷받침 하듯 김안과 병원은 어지간한 대학병원의 세곱절에 이르는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래는 말할것도 없고 수술장, 입원실은 항상 만원사례다. 게다가 365일 무휴로 진료하다 보니 하루도 편하게 쉴 틈이 없다.
이곳 전공의들은 백내장 각막, 망막, 소아안과 안성형, 녹내장등 분야별로 2개월마다 로테이션하며 학문과 술기를 배우고 익힌다. 전공의들의 하루 일정은 오전 6시, 입원환자 회진으로 시작된다. 이어 전공분야에 대한 북리뷰가 있고 이어 외래진료와 수술에 참여한다. 또 다시 오후 회진을 돌고 이런 저런 잡무를 처리하다 보면 오후 7시.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났다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것이 전공의들의 처지다. 당직등 2라운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곳 전공의들은 주말도 없다. 주 5일제라고 세상이 들썩거리지만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린다.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1시 30분까지 근무하고 근무가 끝나더라도 항상 절반 이상은 당직이나 비상대기상태에서 병원을 떠날 수 없다.
"1년차는 밤샘하고 2년차는 항시 대기상탭니다" 2년차 박원호 전공의의 말이다.
1년차 강수연 전공의는 "우리 병원에는 아직도 1년차때 100일 연속 당직을 서는 '100일 당직'제도가 살아있답니다. 그런데 말이 100일이지 그 이상 당직을 서는 경우가 허다하죠"라고 말한다.
"사실은 이때 동료들간에 정이 들어요. 선배나 지도교수 흉도보고, 서로 고민도 얘기하고 긴 시간인것 같은데 짧고도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돼요." 3년차 길현정 전공의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속에서도 국내 최고의 안과 전문병원 전공의로서 자부심도 대단하다. 다른 병원 전공의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다양한 시술과 임상 경험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대현 전공의는 "많은 경험을 하고 있어요. 레이저 시술을 비롯해 망막박리 그림을 1년차가 그리고 볼줄 알아요. 진단은 당연하죠.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고 특히 어렵기로 소문난 망막수술을 많이 접할 수 있어요"라고 자랑이다.
김안과병원은 망막 분야에 특히 강하다. 유수한 대학병원에서도 3D라며 기피하는 분야가 바로 망막이다. 의료수가가 턱없이 낮고 개원가에서도 거의 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안과 병원은 공이 많이 드는 망막 전문의를 배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진료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대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많다. 강수연 전공의는 "환자가 많다보니 정말 특별한 환자만 기억에 남아요. 각막에 궤양이 생겨 2개월가령 치료를 받은 한 할머니 환자가 있었는데 결국 안구를 제거해야 했어요. 그런데 한참 지난후 이 할머니를 로비에서 만났는데 제 손을 부여잡고 반갑다고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또 안과 질환의 특성상 가시적으로 속히 해결되는 질환이 많은데 눈이 보인다고 환호하는 환자를 보고 있느라면 가슴이 뿌듯해 진다고 한다.
이곳 전공의들에게도 어려운 개원가의 상황은 남의집 얘기가 아니다.
'안과는 수련과정도 비교적 편하고 소위 잘나가는 분야여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대현 전공의들가 정색을 한다.
"어려운것은 마찬가지예요. 수련과정도 다를바 없죠. 특히 안과 의사가 돈 많이 번다고 하는데 그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막대한 개원비용을 들여 보험환자 위주로 진료하는것이 고작인데,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집니다. 결코 장미빛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의료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던진다. "의사도 사람이고 직업인입니다. 위험부담 없는 분야에서 편하게 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입니다. 흉부외과 등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과는 당연히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 전공의들은 제대로 된 야유회 한번 갖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꿈은 크고도 다양하다.
"4년간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좋은 개원의가 되고 싶어요"(길현경) "의료와 관련한 정책의 큰 줄기를 바꾸는데 역할을 하는 동료 의사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박원호) "도둑질 하지 않고 소시민적으로 살면서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손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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