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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호스피스 무관심…갈 곳 없는 말기환자들

안창욱
발행날짜: 2009-05-22 06:29:18

품위있는 죽음 위한 케어시스템 미비, "의료진 역할 재정립"

|긴급 점검=대법원 존엄사 인정과 과제|

대법원이 21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회복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필요한 의료비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말기환자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와 의료계가 해야 할 과제와 역할도 적지 않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존엄사 인정 판결 불구 입법 논의 험난
(2)품위있는 임종, 의사가 나서야 한다
대법원이 21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씨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함에 따라 앞으로 존엄사법 제정 등 제도적 보완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러나 의학계는 말기환자들이 아름답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조속히 정착시키고, 의료진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김시영(경희의료원) 이사장은 21일 “암환자들이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말기가 되면 갈 데가 없다”면서 “그러다보니 보호자들은 퇴원을 시키지 않으려 하고 장기간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이로 인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암환자들은 병상이 없어 입원을 할 수 없고, 말기암환자 역시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인해 엄청난 진료비를 부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정착 시급

이에 따라 불필요한 연명치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존엄사법 제정과 함께 암환자를 포함한 말기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지난 3월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공단 일산병원 등 34개 병·의원이 호스피스병원으로 지정하고 총 13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암관리법 개정안에 완화의료 대상, 완화의료전문기관 지정 등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올해 하반기에는 일당정액수가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시영 이사장은 “정부가 호스피스병원 시범사업을 해 온 결과 전문기관이 많이 늘었고, 시설 기준이 마련됐지만 대형병원에 입원중인 말기환자들이 가길 꺼려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이는 품위있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케어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호스피스 적정 수가 보장도 시급"

호스피스병원에 대한 인식이 낮을 뿐만 아니라 전문 통증치료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환자 중심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을 설립하더라도 정부가 검토중인 일당정액수가가 낮다는 불만이 적지 않은 것도 제도 정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호스피스 중심은 의사라는 인식 시급"

의료계가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관심이 부족한 것도 불필요한 연명치료의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암센터 윤영호(가정의학과) 박사팀은 19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17개 병원 연구팀과 함께 1592명의 사망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환자가 사망 직전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은 이유를 묻자 65.7%는 ‘의사가 하지 않기를 권하거나 심폐소생술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라고 응답했고, 27.1%는 ‘가족이 의미 없는 삶의 연장보다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해서’ 라고 답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임종환자(10.5%) 가족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기 때문에(41.2%), 의사가 권해서(28.2%), 가족이 심폐소생술이 최선의 치료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윤 박사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임종관리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연장치료에 대해 의료진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환자의 자율적 선택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생명연장치료에 따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관행을 바꿔 사전 의사 결정제도와 임종환자관리지침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장도 “아직 우리나라는 호스피스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회원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의 경우 의사가 회원의 90% 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시영 이사장은 “일본 의사들이 호스피스에 관심이 높은 것은 정부가 의료수가를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제도를 보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이사장은 “우리도 호스피스 수가를 현실화하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의 자세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의사들은 호스피스를 간호사나 종교인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말고 중심에 서야 한다”고 못 박았다.

말기환자에게 치료가 아닌 케어를 제공하기 위한 인식 전환과 지식 습득이 필요하고, 환자 가족에게 이런 점을 충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아름다운 존엄사가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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