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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10]

양기화
발행날짜: 2015-01-14 08:18:06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한 지붕 세 가족의 코르도바(2)

코르도바 유대인거리의 꽃길
메스키타를 나와 최근에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는 코르도바의 꽃길을 찾았다.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의 롬바드 스트리트의 급경사 내리막길을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여덟 개의 커브를 돌아내릴 수 있게 만든 유명한 꽃길을 연상해서인지 실망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에 매료되었던 사람 역시 조금은 실망스러울 듯하다. 20미터도 안되는 짧은 골목길에 꽃화분을 매달아 만든 분위기이니 말이다.

코르도바 유대인거리에서 만난 안과의사 모하메드 알 가페키의 흉상
꽃길을 지나면 조그만 유대인 성당도 만날 수 있다. 메스키타에 커다란 가톨릭 성당을 밀어 넣은 코르도바의 분위기는 레콘키스타 이후 오히려 문화적으로 퇴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대인 성당을 지나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휘적휘적 따라가던 조형진 가이드가 멈춘 곳은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흉상 앞이다. 백내장 수술을 처음 개발한 아랍인 의사 모하메드 알 가페키(Mohamed Al Gafequi)의 흉상이라고 한다. 정말일까? 그래서 찾아봤다. 모하메드 알 가페울이라고도 하는 가페키는 백내장치료의 전문가로 활약했고, 안과전문의가 되는 길(Guide to the oculist)이란 안과전문서를 저술했다고 한다. 그는 수정체에 들어있는 액체가 뭉치면서 시야가 흐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백내장을 뽑아내는 특수한 형태의 수술도구를 개발하였다. 1965년 그의 사망 700주년을 기념하여 흉상을 세웠다고 한다.

코르도바 유대인거리에서 만난 유대현인 마이모니데스의 좌상
두 번째로 발을 멈춘 곳은 코르도바가 낳은 위대한 유대 현인의 마이모니데스의 좌상이다. 현인의 두 발이 반짝이는 것은 기억력을 지켜준다는 입소문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필자도 현인의 발을 만져보았다. 요즈음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히브리어로는 모세 벤 마이몬(Moshe ben Maimon)이라고 부르는 마이모니데스는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이 되던 1148년 코르도바를 점령한 알모아데왕국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사람을 몰아냈기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척하다가 1159년경 코르도바를 떠나 모르의 페스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그는 유대의 교리와 그리스 철학 등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계속 공부했고 의학도 배웠다.

하지만 알모아데의 치하의 페스 역시 어려움이 많았던 듯 1165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의사로 활동하면서 카이로의 유대교단을 지휘하였다. 의학 분야에서 할례법을 개선하였으며, 치질은 변비에서부터 생긴다고 하여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가벼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담은 <의학원리집>을 저술하였다. 철학책으로는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가 유명한데, 아리스토텔레스파의 아랍 철학자의 견해를 취하여 유대교 신학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코르도바 유대인거리에서 만난 네로황제의 스승 세네카의 동상
마지막으로 네로황제의 스승 세네카의 입상을 만났다. 기원전 4년에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세네카는 로마에서 철학자, 정치가, 연설가 그리고 비극작가로 활동했으며, 로마황제 네로의 집권 초기인 54~62년에 동료들과 함께 로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스토아주의와 금욕주의적 신피타고라스주의를 혼합한 섹스티의 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중기' 스토아 철학의 절충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한다. 조남진은 최근에 출간된 <세네카>를 통하여 세네카의 삶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살펴보고, 세네카의 세계국가사상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죽음과 자살이라는 주제와 영혼, 노예나 재산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서술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려는 분이라면 읽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크 아탈리의 역사추리소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도 12세기 코르도바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이 어떻게 살았는지 가늠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아탈리는 실존했던 철학자 이븐 루시드와 마이모니데스를 등장시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철학책을 찾아가는 여정을 추리 기법으로 구성하였다. 치밀한 고증과 풍부한 사료를 통하여 역사적 사실과 철학적 담론을 담아냈다.

종교적 관용과 개방성을 견지하던 알모라비데왕조가 가톨릭연합세력의 공세에 몰리다가 몰락하고 알모라데왕조로 교체되는 혼란의 시기가 배경이다. 알모라비데왕조 시절의 코로도바의 분위기를 자크 아탈리는 이렇게 소개한다. "코르도바의 회교도들은 우리처럼 진리와 과학, 이성, 철학에 각별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우리처럼 그들 우주의 원리, 창조의 근원, 피조물 속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토론하기를 좋아한단다. 증오로서 다른 종교를 죽여 자신의 신앙을 세우려는 다신교나 기독교와 우리가 맞설 때 회교가 우리 편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란다."

이슬람근본주의를 추종하는 알모아데족이 코로도바를 점령한 뒤로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서로를 인정하던 공존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혹독한 종교적 박해가 시작된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를 쉽게 읽기 위하여, 그리고 코로도바의 이슬람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알모라비데왕조와 알모아데왕조를 요약한다. 후(後) 우마이야왕조의 뒤를 이어 안달루시아 지역을 차지한 이슬람 세력은 베르베르인 부족들의 연합체인 알모라비데 Almoravide)이다.

사하라 출신의 사막 거주민이자 싸우는 수도자였던 알모라비데족은 종교적 열정과 군사적 활동을 통해 11~12세기에 걸쳐 아프리카 북서부와 스페인의 남부 지역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1062년 지금의 모로코에 있는 마라케시에 수도를 건설한 유수프 이븐 타슈핀은 ‘아미르 알 무슬리민’(이슬람 교도의 사령관)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도 바그다드에 있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게 종신의 예를 지킨 것으로 보아 코르도바의 후(後)우마이야왕조의 반대세력이었을 것이다.

1085년 카스티아-레온왕국의 알폰소6세가 톨레도를 함락시키자, 이베리아반도로 출정한 유수프는 톨레도를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알폰소6세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고, 스페인의 장군 엘 시드가 지키던 발렌시아를 제외하고는 남부 스페인지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알모라비데왕국은 1125년 아틀라스 산맥에서 반란을 일으킨 알모아데(Almohade, '신의 일체성을 주장하는 자들'이라는 뜻)족과 22년에 걸친 오랜 전쟁 끝에 수도 마라케시가 함락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알모라비데왕국의 뒤를 이은 알모아데는 스스로를 ‘마디’(세상을 구원하도록 예정된 인물)라고 칭한 이븐 투마르트의 영도로 알모라비데왕조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투마르트의 뒤를 이은 아부드 알 무민이 마라케시를 점령해 알모아데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아부 야쿠브 유수프(1163~84 재위) 칼리프 시대 들어서야 알모라비데의 영토인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를 정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반란이 이어지고, 레온·카스티야·나바라·아라곤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도 연합 세력의 레콘키스타운동이 격심해지면서 1212년 라스나바스데톨로사 전투에서 참패한 뒤에 북아프리카 지방으로 물러났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에서 마이모니데스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븐 루시드(Ibn Rushd)는 법관, 천문학자, 의사로 활약했는데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저작에 꼼꼼한 주석을 달아 해석한 주해서를 남긴 업적이 평가되고 있다.

플라톤에 치우쳤던 이븐 시나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토대로 이슬람철학을 재해석했는데, '신학과 철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합리주의적 태도로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옹호했다고 한다. 국내에도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성과 보편적 개념을 파악하려 하였는데, 아베로에스는 "형이상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근원적 목적은 단지 자연학문들의 앎에 관하여 앎의, 말하자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사물들의 가장 높은 원인에 관한 앎의 완성을 위하여 아직 남아있는 모든 것의 앎을 매개해야만 하는 것에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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