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언덕 위에 서 있는 건물이 아니트카비르"라고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만으로 지나친 버스가 정차한 곳은 한국공원 앞이다. 1973년 한국과 터키 양국은 수교 20주년을 맞아 서울과 앙카라에 각각 공원을 조성키로 하였다.
터키는 서울 여의도에 앙카라공원을 조성하였고, 한국 역시 앙카라에 한국공원을 조성하였다. 한국은 6.25동란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터키군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석가탑을 본뜬 탑을 세웠다. 일정 때문에 이른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개장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닫힌 문 밖에서 전몰터키장병을 추모하는 묵념을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터키는 1957년에 세계에서 열 번째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 비록 정부 승인은 늦었지만, 터키 정부는 1950년 북한군의 남침에 따라 UN이 연합군의 참전을 결의하자 바로 정규군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1950년 10월 19일 터키정부가 파병한 1개 여단 규모의 지상군이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3개의 보병대대와 1개의 105mm 곡사포대대 및 지원부대 등 전체 병력은 약 5000명이었다. 터키군 제1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후방지역의 경계 작전을 수행하다가 11월 하순 경 전방지역에 배치되어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1여단은 51년 11월에 제2여단과 교대하였고, 제2여단은 1952년 8월에 제3여단과 교대하였기 때문에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군병력은 연 1만 5000명에 이르렀다. 한국전 기간 동안 터키군은 741명이 전사하고 2068명이 부상당했으며, 407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는 피해를 입었다.
터키군의 용맹성은 1950년 11월말 평양 북쪽 군우리 전투와 1951년 1월말 수원 동쪽 금양장리 전투를 통하여 빛났다. 군우리 전투에서는 많은 손실을 입으면서도 중공군의 진격을 3일 동안이나 막아냄으로써 유엔군의 퇴로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금양장리전투에서는 백병전을 통하여 151고지를 점령하여 중공군을 퇴각시켰는데, 이 전투에서 터키군은 한명이 40명의 중공군을 무찌르는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터키사람들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가지'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코레 가지'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것이다. 코레 가지 아저씨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도 한국과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를 설명했지만, 코레 가지들에게 한국은 칸카르데쉬(피로 맺은 형제)였다.
1973년에는 앙카라의 한국공원 안에 참전 기념탑을 건립하였는데, 탑의 외벽에는 전사자의 성명과 생년월일 그리고 전사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금양장리 전투가 치러진 경기도 용인군 성산면 자연농원 앞에 터키군 참전기념비를 1975년에 건립하여 그들을 기리고 있다(1).
사실 터키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해외에 병력을 파병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어쩔 수 없이 동맹국 편을 들었다가 패전의 멍에를 쓰고 오스만제국이 해체된 아픈 기억을 잊지 않았던 터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터키가 가지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주축국이나 연합국 모두 터키가 상대편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압박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연합국 측에 섰다고 보일 정도로 상당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연합국은 터키의 참전을 압박하였고, 결국은 터키도 원칙적으로 동의하였고, 1944년 8월 독일과 단교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참전 여부와 무관하게 전승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터키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라거나, 터키가 관리하는 양 해협을 공동관리하자고 압박하고 있어 서구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터키의 전략적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미국은 초기에는 터키를 연합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터키에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게 되었다(2).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터키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가 민감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터키정부는 아직 승인도 하지 않은 한국에 전투병을 파병토록 하는 결정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전날 앙카라로 향하면서 가이드가 보여준 TV프로그램은 터키와 터키사람들의 진한 인간애를 새삼 깨닫게 했다. 2010년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MBC가 제작한 '코레 아일라'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터키군 장교출신 쉴레이만 비르빌레이씨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 이름도 코렐리라고 지을 정도로 한국 사랑이 남달랐다. 그것은 한국을 떠나면서 어쩔 수 없이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아일라' 때문이라고 했다.
격전지 군우리에서 퇴각하면서 길에서 울고 있는 너댓살 정도된 여자아이를 발견한 쉴레이만는 부대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일라는 금방 부대의 꽃이 되었다. 하지만 임기를 마친 쉴레이만씨가 터키로 돌아가면서 일이 꼬였다. 부모가 없는 아일라가 걱정된 쉴레이만씨는 터키로 데려갈 길을 모색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자 어쩔 수 없이 앙카라 학원에 맡겼다는 것이다.
터키로 돌아간 다음에도 쉴레이만씨는 모스크에 갈 때마다 아일라의 안녕을 빌었고, 언젠가부터 아일라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터키 한인회와 관계기관 그리고 앙카라학원 출신들의 도움으로 아일라의 소재가 밝혀지고 2010년 한국전 60주년을 기념하여 참전용사를 초청하는 행사에 쉴레이만 부부가 한국을 방문하는 길에 아일라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담긴 특집다큐멘터리를 보면서 6.25동란의 참상과 전쟁 가운데 피어난 아름다운 인간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코렐리들도 빠르게 줄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특별한 사랑을 가진 코렐리들의 숭고한 뜻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멀리 야트막한 산이 둘러 서 있는 광활한 평원을 가르며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도로를 따라 버스는 꾸준하게 달린다. 그리고 보면 우리 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느림의 미학을 몸에 익히고 있음이 틀림없다. 얼마쯤 그렇게 달렸을까 버스 창밖으로 하얗게 빛나는 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건기인 지금은 말라붙어 벌판처럼 보이지만 우기에 물이 들이차면 표면적이 1665 km2이나 되는 터키에서 두 번 째로 큰 호수인 소금호수(Tuz Golu)이다.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150km 떨어져 있는 이 호수는 연중 대부분 40cm도 안되는 깊이인데, 특히 건기에 해당하는 여름에는 소금결정이 30cm 두께로 쌓인다. 이 호수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터키 소금시장의 6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3).
그렇다면 터키에 머무는 동안 먹은 음식에 들어간 소금은 나와 함께 한국으로 가는 셈인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내 몸 안에 머물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터키에 한 번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 터키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이어진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소금호수에서 만들어진 소금 때문은 아닐까? 호수가 얼마나 넓은 지 건기인 지금도 소금밭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우기에는 수평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남북으로 누운 호수가 끝나는데까지 버스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야한다.
버스에서 내려 호수로 들어가려면 이곳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우리말로 손을 펴라고 한다. 그리고 수저에 담은 소금을 올려주고 손바닥을 비벼보라고 한다. 소금을 비비면 피부가 절어들 것 같아 선뜻 손을 내밀기가 무엇하지만 막상 손바닥에 올려진 소금을 비비면 의외로 매끄러운 느낌이 남는다. 아마도 오일에 적신 소금이 아닌가 싶다. 손을 비빈 사람들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여 손을 씻게 하지만 소금오일을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게에서 나와 바삭거리는 소금을 밟으며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소금밭의 끝이 어디인지 끝을 찾아 눈길을 옮겨보지만 허공을 훑을 뿐이다. 호수에서 걸어나와 가이드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즉석 석류주스를 5터키리라를 주고 사 마신다. 시큼한 느낌이지만 목넘김이 그리 나쁘지 않다. 요즘 석류가 막 수확되는 시기라고 한다. 식물성 여성호르몬이 풍부하여 의학적 효능이 뛰어나다는 석류이다.
참고자료
(1) 이희철 지음. 터키 299-304쪽, 리수, 2007년
(2) 쉴레이만 세이디 지음. 터키민족 2천년사 241-253쪽, 애플미디어, 2012년
(3) Wikipedia. Lake T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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