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헬스케어의료기기를 활용한 ‘원격모니터링’(Remote Monitoring)이 활성화되면서 효용성과 경제성이 입증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료계와 정부 간 ‘원격의료’(Telemedicine) 허용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의료비 절감 등 순기능을 가진 원격모니터링이 정치적 논쟁에 매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원격의료와의 엄연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개념으로 혼동돼 의료적 순기능과 산업적 가치마저 사장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메디칼타임즈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일찍이 심혈관질환자를 대상으로 원격모니터링을 시행중인 해외사례를 살펴보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 1월 28일 롯데시티호텔마포에서 열린 ‘유헬스케어의료기기 사용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에서는 대한심장학회 부정맥연구회 임원들과 정부기관·산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원격모니터링의 도입 필요성과 선결과제에 대해 열띤 토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는 가톨릭의대 순환기내과 노태호(부정맥연구회 회장) 교수가 좌장을 맡고 연세의대 순환기내과 정보영(부정맥연구회 총무이사)·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박상원(부정맥연구회 정책이사) 교수가 심혈관질환자 대상 원격모니터링의 가치와 임상적 유용성에 대해 발표했다.
또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첨단의료기기과 강영규 연구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인프라개선 TFT 산학협력단 김재선 단장·치료재료실 유미영 실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본지는 이날 좌담회 발표내용을 총 3회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첫 번째로 정보영·박상원 교수가 발표한 호주 사례로 살펴 본 심혈관질환자 대상 원격모니터링의 임상적 가치와 유용성에 대해 정리한 내용을 소개한다.
좌장 노태호 교수: 오늘 논의하는 원격모니터링(Remote monitoring)은 주로 심혈관질환자 사례에 국한되지만 사실 심장환자뿐만 아니라 여러 환자들에게 유용성을 갖고 있다.
특히 심장 쪽은 의학적 근거가 상당히 쌓여있고 환자 치료나 재정적인 측면에서의 효과 또한 이미 입증된 상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원격모니터링이 원격진료와 혼동되는 등 여러 현실적인 장애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 좌담회가 해외사례를 통해 원격모니터링이 진정 환자한테 도움이 되고 건보재정 절감 등 효율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성이 있다면 원격모니터링 수가 책정 등 제도적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정보영 교수: 2004년 미국에서 심혈관질환자 원격모니터링을 처음 접했을 당시 이미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아직까지 못 들어오고 있는 현실인데 부정맥 하는 의사로서 답답한 마음이다.
지난해 호주에서 심혈관질환자 원격모니터링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호주 역시 원격모니터링이 보편화 돼있다.
심혈관질환자 원격모니터링은 심장질환 환자에게 이식한 인공심박동기(Pacemaker)·이식형 제세동기(ICD)와 심장재동기화치료(CRT)를 위한 양심실 심박동기(bi-ventricular pacemaker or ICD) 등 심장삽입 전기장치(Cardiac Implantable Electronic Device·CIED)에서 나오는 정보가 무선으로 트랜스미터(단말기)를 거쳐 외부서버에 자동 저장된다.
따라서 CIED에 미리 설정된 셋팅 값에 따라 환자에게 부정맥·심부전 등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바로 알람이 의사와 환자에게 자동으로 통보되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빠른 처치가 가능하다.
심장기능이 정말 안 좋은 환자는 5년 생존율이 50%가 채 안 된다. 이는 암 보다도 (생존율이) 낮다.
최근 2년간 원격모니터링을 통해 우리병원 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진 데이터가 나오면서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박상원 교수: 원격모니터링의 장점은 환자 생체신호와 정보를 트랜스미터를 통해 실시간 보내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환자에게 이상 징후가 발생해 CIED에서 알람 작동 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진과 환자에게 통보가 가도록 설정돼 즉각적인 병원 방문을 유도해 환자 생존율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특히 원격모니터링은 환자에게 높은 만족도를 제공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3개월마다 병원을 정기 방문해야 하는 횟수가 반 이상 줄면서도 이상 징후를 빨리 발견할 수 있고, 주치의가 본인 상태를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또 심장박동기와 같은 이식형 의료기기는 2~3% 오작동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원격모니터링으로 기기 세팅 값을 자주 체크함으로써 디바이스 또한 안전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밖에 ICD는 전기충격을 주는 장치인데 이식 환자의 경우 과도하게 전기충격을 받으면 사망률이 높아지고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기고 한다.
원격모니터링은 AF(심방세동) 등 이상소견을 조기에 진단하고 EMI(전자파방해) 등 디바이스 문제까지 사전에 발견해 전기충격 횟수를 50% 이상 줄일 수 있다.
정보영 교수: 원격모니터링의 임상적 가치와 유용성은 이미 많은 해외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국내의 경우 심혈관질환 환자들은 대략 3개월마다 병원을 방문해 상태를 체크 받는다.
원격모니터링은 상시적인 환자 모니터링으로 병원 방문 횟수를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갑작스런 이상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고 빠른 치료로 환자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해외 임상사례를 살펴보면, 이식형 제세동기(ICD) 삽입 환자에서 심전도상 심근경색 지표가 될 수 있는 ST 분절(ST segment)의 급격한 변화를 감지하는 알람이 울려 병원 입원이 이뤄졌다.
입원 후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났고 곧이어 두 번째 알람도 작동했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혈관조영술(Angiogram)을 통해 실제로 혈관 협착이 존재하는 위험한 상황임을 확인하고 혈관중재술(PCI)을 시행할 수 있었다.
다른 ICD 환자 역시 알람 작동을 통해 증상이 악화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를 넘겼다.
이 환자는 ST 분절의 급격한 변화로 알람이 작동해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1차 알람 9시간 후 입원 상태에서 2차 알람이 작동하면서 의료진은 즉각적인 혈관중재술을 통해 심동맥 협착을 발견하고 즉각적인 수술을 시행했다.
두 사례 모두 실제로 혈관 협착이 발견돼 혈관중재술을 요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격모니터링은 이 같은 급박한 상황을 의료진에게 전달해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 생존율을 크게 개선시켜 줄 수 있다.
실제로 해외 통계자료를 보면 원격모니터링을 사용한 환자군 생존율이 대조군 대비 크게 향상된 것을 알 수 있다.
박상원 교수: CIE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모니터링은 AF(심방세동)·VT(심실빈맥)·VF(심실세동)과 같은 부정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또 심방세동의 조기 발견으로 뇌졸중을 감소시키고 ICD 전기충격도 줄일 수 있다.
특히 부정맥·심부전 등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함으로써 적절한 치료를 통해 입원율을 감소시키고 환자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원격모니터링에 협조적인 심장박동기·제세동기·재동기 등 CIED 환자가 비협조적인 환자군보다 생존율이 더 높다는 결과들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또 미국에서는 심부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과도한 의료비용이 문제가 되면서 원격모니터링이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됐다.
심부전은 심장 펌프 기능이 떨어져 체내 수분이 쌓이는 병이기 때문에 환자 이식기기에서 측정된 체내 수분 함유량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질병이 악화되기 전 미리 치료를 하면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영 교수: 하다못해 싱가포르·홍콩 의사들도 원격모니터링을 통해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법적·제도적 문제로 도입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와이파이도 잘 안 터져서 이메일을 못 보낼 정도로 전산시스템이 안 좋은 호주에서 원격모니터링을 보고 배우고 하는 점 자체가 답답할 따름이다.
의사들 입장이야 다 똑같지 않겠나. 환자를 보는 주치의로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못 해주고 있는 것이 아쉽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위해 정부 정책에 관심을 갖고 (원격모니터링 필요성 주장을) 더 강하게 노력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상원 교수: 외국에서는 상시적으로 하고 있는 걸 우리는 뭐 때문에 못하는 건지 환자를 보는 의사 입장에서는 약이 많이 오른다.
과거에는 다른 나라 의사들이 한국 의사한테 기술을 배워갔는데 이제는 외국에서 상시적으로 쓰고 있는 장비들을 정작 한국에서는 급여 제한 등 여러 문제로 쓰지 못하는 점에 화가 난다.
심혈관질환 환자 원격모니터링을 남들보다 빨리 도입해 선구자처럼 이름을 알리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특징 중 하나가 기술로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원격모니터링을 도입하고 신기술을 적용해 기존보다 더 좋은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노태호 교수: 원격모니터링은 해외사례에서 그 효과가 너무나 명백한 만큼 국내 도입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다만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료비용 절감 등 원격모니터링의 장점을 현 의료제도 안에서 빠른 시일 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방안들을 더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오늘 좌담회는 이런 논의를 공개적으로 시작한 첫 번째 자리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은 의료강국이니깐 앞으로도 좋은 위치를 차지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좌담회가 심혈관질환자 대상 원격모니터링 도입을 위한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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