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의료기기 중에서도 외산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품들이 많다. 하지만 병원 구매팀이 그런 제품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힘들거니와 중소업체들이 제품을 알리기 위해 병원을 찾아다닐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 않나”
전국병원구매물류협의회(이하 구매물류협의회) 이재령(분당서울대병원) 회장은 상급종합병원들이 외산 의료기기(치료재료)를 선호한다는 국산 의료기기업체들의 불만에 대해 이 같은 현실적인 이유를 내놓았다.
고가의 수입 의료기기 대신 기술력이 동등하거나 또는 가격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국산을 쓰고 싶어도 좀처럼 접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이 회장은 “병원에서 국산 의료기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좋은 제품을 찾기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검증이 안 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검증이 안 된 부분이 많지만 그렇더라도 국산 의료기기를 자꾸 사용해야 제품 개선이 이뤄지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국산 의료기기라도 외산과 비교해 동등한 성능과 안전성 등을 검증받은 제품이라면 병원에서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한 “일부 외산 의료기기의 경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물류자산팀(구매물류팀)이 시장조사를 통해 외산을 대체할 국산 의료기기를 직접 찾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 병원은 외산과 국산을 비교해 사용해보는 샘플 테스트를 많이 한다”며 “이 결과 국산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장비기자재 또는 진료재료기자재심의위원회에 올려 검토 후 해당 제품을 도입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덧붙여 “감염 예방을 위한 필터주사기의 경우 당초 고가의 외산을 구매했지만 지금은 모두 국산 제품을 쓰고 있다. 이 또한 외산과 국산 제품 샘플 테스트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결과 중 하나”라고 실제 사례를 언급했다.
이재령 회장은 2014년부터 개최된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K-HOSPITAL FAIR)를 계기로 조직된 구매물류협의회가 국산 의료기기 사용 활성화는 물론 급변하는 병원 구매물류 환경에 대응하는 구심점 역학을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5년 꾸려진 구매물류협의회에는 현재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병원 약 40곳의 구매·물류팀장이 회원으로 가입돼있다.
그는 “과거에는 병원 구매물류팀이 제품명 정도만 알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종의 창고관리자처럼 인식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이 환자 몸속에 들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수가를 받을 수 있는지, 외산 대체 국산이 있는지 등 구매 시 검토할 내용이 많아졌기 때문에 전문성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K-HOSPITAL FAIR는 구매팀이 찾는 국산 의료기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공급사와 현장상담까지 가능해 병원과 업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게 이 회장의 설명.
그는 “병원 신·증축 또는 의료기기 구매계획이 있는 구매팀장들은 필요한 의료기기를 전시장 한 공간에서 살펴보고 사전 약속을 통해 1:1 구매상담도 할 수 있어 편하다”며 “업체 입장에서도 평소 찾아다니기 힘든 구매담당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평가했다.
전국병원구매물류협의회는 K-HOSPITAL FAIR 참여를 통해 국산 의료기기 사용 확대에 일조하는 것은 물론 병원 대내외적으로 급변하는 구매물류 환경에 대응하고자 회원사 간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과 구매물류 담당자들의 전문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 회장은 “구매물류협의회가 생기기 전에는 전국의 병원 구매물류팀이 상호 정보를 공유하거나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없었다”며 “과거에는 병원마다 정보 노출을 꺼려 폐쇄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병원 구매물류팀이 정보를 오픈하고 성공사례를 공유해 구매물류 혁신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재령 회장이 기자에게 보여준 구매물류협의회 단체 카톡방에서는 회원 병원 구매·물류팀장들이 각종 정보들을 공유했다.
한 예로 최근 불거진 이물질 유입 수액세트의 경우 언론보다 먼저 단체 카톡방에 관련 사진과 정보가 고스란히 올라가 있었다.
그는 “회원 간 공유하는 정보가 매우 광범위하다”며 “가령 이번에 어떤 치료를 시행하는데 구매해야 하는 수입 제품이 너무 비싸다, 이 가격이 적정한 수준이냐, 대체할만한 국산 제품이 있느냐, 실제 써본 병원이 있느냐 등 제품부터 수가문제까지 다양하다”고 전했다.
이재령 회장은 특히 병원 구매물류가 과거 관리 영역에서 이제는 경영의 일부분으로 제3의 이익을 창출하는 원천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사용부서가 의료기기를 신청하면 위원회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조건 구매해주는 병원들이 많다”며 “이제는 비용분석을 통한 물품 선정과 투명성을 높인 구매 프로세스를 통해 구매물류 비용을 절감하는 병원 구매물류 혁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어 “분당서울대병원은 사용부서 의사가 제품 구매를 신청하면 신청자가 해당 장비기자재 또는 진료재료기자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해 해당 제품이 왜 필요한지를 직접 브리핑을 통해 설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때 구매물류팀은 위원회 간사를 맡고 팀장이 위원으로 참여해 구매 여부를 검토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령 회장은 “구매물류협의회는 병원 구매물류 혁신을 위해 구매물류팀에 요구되는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하고자 내년부터 별도 위원회를 신설해 교육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병원 구매물류비용 절감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 기여하고 환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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