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라면 팍팍한 개원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미래가 너무 냉정해 망설여진다. 이미 개원을 했다면 열정적 과거를 떠올리며 현실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미래와 과거를 잇는 것은 현재.
인천 정한수비뇨기과 정한수 원장(43)은 2016년 5월 개원한 개원 3년차 초보 개원의다. 서울탑비뇨기과 조규선 원장(54)은 올해로 개원 17년차를 맞았다.
메디칼타임즈는 '현재'에서 냉정한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개원을 선택한 초보 개원 의사와 열정적 과거를 추억하는 베테랑 선배 의사를 만났다.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각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개원 3년차 젊은의사의 경쟁력은 '전문성'
가톨릭 관동대 의학과 1회 졸업생이다. 그렇다 보니 개원을 하고 싶어도 조언을 청할 선배들이 없었다. 봉직의를 하며 세미나란 세미나는 최대한 다니면서 선배 의사들이 말하는 개원 팁을 캐치하려고 노력했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에서 젊은 의사를 위해 선배들이 공유하는 정보도 열심히 들었다.
더불어 비뇨기과 의사로서 실력을 쌓았다. 실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자신감 하나로 개원 시장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개원을 한다면 40세 이전이 좋다는 선배 의사들의 조언을 뒤로하고 40세가 넘은 나이에 개원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봉직의사를 하면서 충분히 내공을 쌓았고, 환자들도 따라왔으니 말이다. 맨땅에 헤딩한 셈은 아니다. 그래도 개원 첫 달은 팍팍했다.
개원 입지 조건은 재래시장과 버스정류장 존재, 평수, 관리료를 중점적으로 봤다. 6년 동안 비어있던 건물 한 층을 임대했다. 건물 투자비용이 저렴한 대신 대학병원에서 쓸 법한 최신 장비를 사들였다. 환자와 의사 동선을 고민하면서 인테리어 설계를 7번이나 바꿨다.
냉정한 미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재 필요한 것은 전문성과 환자와 끈끈한 관계(일명 라포)를 만드는 것.
"저쪽에서 약을 이렇게 썼는데 안 들어"라면서 환자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검사와 처방약에 대해 전문적인 판단을 세우고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환자 한 명을 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신환은 15분 정도 설명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의 환자에게도 충분히 설명을 해줘서 정말 잘 치료를 받았다는 인식을 주는 게 훨씬 낫다. 입소문은 무시 못 할 부분이다.
환자가 화를 내면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아직 없다. 수많은 경함을 통해 내공을 쌓아야 하는 부분이다. 다행히 비뇨기과의사회 선배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법 등에 대해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한 달을 더 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은 설명 부족이다. 설명을 잘 들었다는 생각만 들게 해줘도 소위 '약발'이 더 잘 듣는다. 환자와 라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는 아직도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 밖에도 크게는 두 개의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직원 채용 문제다. 몇 달째 채용 공고를 내고 있는데 원서를 내는 사람조차 없다.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다. 과거 이력서를 냈던 사람들한테 연락을 해봐도 선뜻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도 장해 요소다. 개원하자마자 300만원을 삭감당했다. 위장약을 처방하면서 상병코드를 넣지 않은 것이다. 약 처방에 대한 상병코드를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삭감 당한 것이다. 교과서에 없는 내용인데도 정부가 만든 고시는 법전이 되는 현실이니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심평원에 전화를 자주 해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진료과 중에서도 비뇨기과 개원 여건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졸업할 후배는 없고 은퇴를 생각하는 선배는 많으니 말이다. 전문성을 갖고 자신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하면 냉정한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개원 17년차 선배의사 경쟁력은 '전문성'에 '소통'까지
2001년 7월에 개원했으니, 횟수로는 17년째 같은 자리에서 개원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개원할 수는 없으니 페이닥터를 하면서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웠다. 그 당시에는 이를 '의탁'이라고 했다. 의국 선배의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대학 동문이라도 본인의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 게 흔한 상황에서 그 선배는 기꺼이 오픈했다. 2년 정도 일하다가 독립을 준비했다.
의사들은 학교별로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비뇨기과의사회가 하려고 한다. 비뇨기과의사회 임원들은 일면식도 없는 친구가 와서 도움을 달라고 하면 선뜻 나선다. 소위 베테랑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 젊은 의사를 위한 청년의사포럼도 그 일환이다.
어느덧 선배 의사가 됐다. 개원을 위해 동문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이 경험을 나누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배웠으니 말이다.
일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후배들을 원장으로 선임해 1~2년 동안 함께 근무하며 노하우를 전수한다. 진료실 한편에 후배들이 볼 수 있도록 모니터를 따로 마련해 두고 진료기록을 차팅하는 것까지 공유한다.
나도 개원을 준비할 때 잘 된다는 의원을 얼굴도 모르는데 무작정 찾아갔기 때문에 그 어색함과 어려움을 안다. 그렇게 다니면서 인테리어 콘셉트도 가져오고 사진도 찍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개원 준비 당시 썼던 수첩을 최근 펼쳐봤더니 그때 썼던 아이디어 중 절반도 실현을 못했더라.
개원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입지 선정이다. '수유시장 입구, 롯데리아 건물 4층, 3층 내과 성업 중'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이끌리듯이 현재 자리를 계약했다.
개원 입지는 진료패턴에 따라 정하는 게 중요하다. 고가 수술을 하는 사람이 시장이 있는 동네에 개원해서는 안 된다. 비뇨기과는 보통 피부과와 함께 하는 게 일반적인데 많은 비뇨기과 개원의가 피부과 진료를 더 많이 보는 게 현실이다. 나는 환자 비율이 5대 5다.
후배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것은 환자와 소통의 방법이다. 초진 환자는 설명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린다. 시청각 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어 전립선 검사 결과를 설명할 때는 PPT를 활용한다. 50세 이상 남성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씩 전립선 검사를 해야 하는데 보통 "지금 이상도 없는데 뭐 하러 쓸데없이 검사해"라는 소리가 되돌아오기 쉽다. 이때 3년 동안 검사를 안 했다 암이 발생, 전이까지 된 환자의 사례를 보여주며 검사의 중요성을 고취시킨다.
대화 말미에는 "박사는 박사끼리 이야기해야 한다. 오늘 설명 잘 들어서 박사 돼서 가야 앞으로도 얘기할 수 있어요"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단골 환자와는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로드뷰를 활용해 고향을 함께 찾아가 보기도 하고 손을 자주 잡아주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개원 전 거친 전임의, 봉직의 과정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전문의 취득 후 1년 만에 개원한 사람이 빠르기는 하겠지만 5년을 다른 생활했더라도 결국 5년의 시간이 묻어 나온다.
더 '싸게'가 아니라 더 '특화'해서 승부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 수술이 다르고, 회복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환자가 직접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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