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에서 방역 기능을 대폭 강화한 독립된 중앙부처인 '청' 승격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뜻밖의 성과였다.
정은경 초대 청장을 중심으로 5국 3관 41과 총 1476명(본부 438명, 소속기관 1038명) 규모로 국립감염병연구소와 질병대응센터, 국립보건연구원, 국립검역소, 국립결핵병원 등을 총괄하는 중앙부처 위상을 갖췄다.
하지만 질병관리청 내부를 들여다보면 갈 길은 멀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질병관리청이 유년기를 거쳐 건강한 청년과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조직의 독자 생존이다.
9월 출범한 질병관리청은 현재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심의를 받고 있다.
질병관리청 내년도 예산안은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 당시 보건의료와 방역 연속 사업을 중심으로 편성됐다.
복지부가 확정한 예산안인 만큼 질병관리청 독자적 사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질병관리청 국과장들이 국회와 기재부에서 분주하게 뛰고 있지만, 편성된 사업 예산 삭감을 막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다시 말해, 복지부가 이미 차려놓은 밥상을 질병관리청만의 식단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의미다.
내년에 준비하는 2022년 예산안 편성이 질병관리청의 실질적인 첫 가계부가 되는 셈이다.
또 다른 과제는 인력 문제이다.
본가인 복지부의 보건차관(2차관) 신설과 맞물려 질병관리청와 인적 교류가 진행 중이다.
질병관리청 근무를 원하는 복지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신청은 예상대로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비고시 공무원들 못지않게 적지 않은 행정고시 공무원들도 질병관리청으로 이동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질병관리본부 시절 259명에 불과했던 본부 인력이 역학조사관을 포함해 438명으로 증가했다. 산하기관을 합치면 384명 순증됐다.
일각에서는 정은경 청장이 행정고시 출신 영입을 복지부에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독립적 중앙부처로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행정고시 중심 관료사회에서 기재부와 행자부 인맥과 사업 경험이 많은 행정고시가 필요한 공직사회 현실이 내재되어 있다.
질병관리청 차장을 비롯해 국과장급 상당수는 복지부에서 이직한 행정고시 공무원이다.
비고시 공무원들의 경우, 과장급 일부 서기관을 제외하고 주무관과 사무관으로 소속기관과 업무만 바뀐 모양새이다. 이들은 질병관리청을 택한 이유는 많으나 그중 복지부보다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으로 승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내년이 질병관리청 독자생존의 기로인 이유이다.
질병관리청을 선택한 공무원들이 복지부와 별반 다른 게 없다는 회의감이 커진다면 부서 업무는 물론 조직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수장 한 명만으로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데 한계가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질병관리청 출범 이후 조직만 확대됐을 뿐 달라진 점은 없다"면서 "걸음마 단계인 질병관리청 입장에선 서운하겠지만 코로나 방역 못지않게 독자적인 보건사업과 예산, 조직 등 명확한 존재이유를 보여줘야 의료현장도 과거와 다른 질병관리청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언론까지 극찬한 지명도와 신뢰도를 보여준 정은경 청장의 새로운 탈바꿈이 필요하다.
그도 질병관리청의 험난한 여정을 인지하고 있다. 정 청장의 지난 9월 취임사에는 많은 내용이 녹아있다.
"우리는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 명의 선원으로서 저는 여러분 모두와 끝까지 함께 이 항해를 마치는 동료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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