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가르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특히 대학교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의과대학은 예과와 본과로 나눠지는데 예과 때는 대부분 교양과목만 배운다. 1학년 때 생명윤리에 대해 배우는 생명과 나눔, 논리적 문장 구조와 언어 등을 배우는 논리적 사고 등의 교양과목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의학 이외에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고, 본과가 돼서 배우는 임상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들과는 수업의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인 대학 교수님들은 1년동안, 혹은 한 학기동안 한 과목을 책임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첫 번째 수업에 들어오고 마지막 수업할 때에도 들어오시는 분은 바로 해당 교수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을 진행하시기에 본인 수업의 커리큘럼에 대해 이해가 잘 되어있어서 어떤 수업을 어느 시간에 배치하고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그리고 하나의 수업 내에서 어느 내용을 먼저 꺼내야 할지도 수 년간 같은 수업을 반복해왔기에 능숙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의과대학의 교수님들, 특히 임상에서 환자를 보고 치료를 행하는 것이 업무의 9할 이상인 교수님들은 해당 과목의 책임교수가 아닌 이상 수업이 얼마만큼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교수님은 이미 수업을 진행해서 학생들이 알고 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내용들을 학생들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학교육실과 책임교수님이 해당 과목 수업에 들어오는 수십명의 교수님들의 스케줄을 고려해 시간표를 짜는 것이기에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좀 더 짜임성 있고 타이트한 수업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8-90년대만 해도 의학을 배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들은 바로는, 그 당시에 당연히 ppt라는 것도 없었고 아이패드라는 것도 없었기에 의학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사람은 수업 하나하나가 노고였다고 한다. 그 때부터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은 수업 듣기가 한결 편하다. 무거운 교과서들은 작은 아이패드 안에 모두 들어가 있고, 필기를 위한 종이노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슬라이드는 이제 ppt의 슬라이드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과거의 의대생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날아와 의대수업을 듣는다면, 정말 편하게 공부한다고, 수업에 아무런 불만도 없을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의대생들은 또 지금 나름대로의 수업에 대한 고충이 있다. 교수님들은 수업 ppt를 직접 만드시기도 하고, 교과서 출판사가 보내 준 교수용 수업 ppt를 사용하기도 한다. 수업 ppt는 수업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만일 학생들의 입장에서 ppt의 내용이 뒤죽박죽이고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느껴지면, 그 ppt를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엉망진창인 ppt를 이용해 수업하시는 교수님들이 꽤나 있다는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 교수님의 수업자료의 퀄리티를 판단한다는 것은 굉장히 괘씸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업 자료가 읽기 힘들게 만들어 지면, 수업 자료를 보고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어진다는 게 사실이다.
의학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의학교육 질에 대한 평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해당 주제와 관련해 오고가는 얘기들에는 의대졸업 이후의 의학 교육, 의대 학생 한명 당 교수의 수 등등 여러가지가 오고 가지만 학생들에 입장에서 의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의과대학의 성적은 향후 수련병원 결정과 수련과목 결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원하는 병원 혹은 과가 있는 학생은 여기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하게 된다. 일부 패스 올 논패스를 도입한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교가 성적을 학점제로 매긴다. 학점은 책임교수 재량에 따라 비율이 정해진다. 4학점, 5학점하는 과목에 A 비율이 10%도 안 될 수도 있고, 1학점, 2학점 하는 과목에 A 비율이 50%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인턴을 뽑을 때 보는 성적은 흔히 석차를 말한다. 10%p로 나눠서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매긴다. 그렇기에 학점을 잘 받아서 좋은 석차를 받는 것이 유리한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과목별로 학점의 비율은 달라질 수 있어서, 학생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만일 내가 매우 열심히 한 과목에서 1등을 했지만 A를 100명 중에 50명까지나 준다거나 겨우 겨우 10등을 하였지만 100명 9등까지 A를 준다고 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뒤에 과목의 학점이 4학점, 5학점이나 하는 학점이 높은 과목이었다면 허탈감은 배가 되고 향후 공부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주변에 그러한 동기가 있었는데,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웠다. 학점제가 아니라 석차만 나오는 석차제를 사용하거나, 전 과목을 패스 올 논패스로 진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꽤나 오래되고 여러 의과대학에서 사용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I will reverence my master who taught me the art'는 나에게 의학을 가르쳐준 이를 부모님처럼 모시고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앞의 글의 내용들이 다소 나의 스승과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늦게나마 든다. 하지만 나는 의과대학 교수님들은 먼저 앞서 길을 간 선배로서, 의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영웅으로서, 그리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이 연구하고 탐구해야 하듯이 의학교육에 있어서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교수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피교수자의 입장 역시 반영된 의학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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