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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Paris)는 예술과 낭만으로 가득하겠지

경상국립대학교 본과 1학년 박성연
발행날짜: 2024-01-02 05:30:00 업데이트: 2024-02-01 13:58:28

경상의대 본과 1학년 박성연

"파리 증후군이라는 말 알아?"

지난겨울,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오던 날이다. 기차가 지연돼 자정이 다돼서야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역 밖을 나왔다.

'희미한 가로등, 구정물 가득한 웅덩이, 쓰레기 더미들, 밀착해서 다가오는 위협적인 모습의 흑인, 노상 방뇨를 하는 사람들, 화려한 네온사인의 유흥업소들' 내게 첫 파리는 이렇게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채 숙소로 가는 길에 같이 여행하던 오빠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오빠는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가 어디야? 나는 파리였거든. 사랑과 낭만 가득한 파리의 밤을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려왔어. 그런데 웬걸?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잖아!"라며 투덜거렸다.

"너 파리 증후군이라는 말 알아? 젊고 부유한 일본인 여성들한테 주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그려왔던 파리의 모습이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망상, 현기증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병인데 실제로 있어. 찾아봐! "오빠가 말했다.

내가 가졌던 파리에 대한 환상이 걱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홍세화)"를 읽고 책 속에서 그려진 빠리는 내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토록 개성이 강한 빠리지앵들이 모여 사는데도 서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했다. 파리 사람들 속에 녹아있는 똘레랑스와 여유, 그리고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내 가슴 어딘가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껏 부푼 어린 마음은 파리 입성 신고식을 치르고는 빠르게 식어갔고, 차가웠던 공기 속에서 왠지 모를 불안함에 압도당한 채 그 겨울밤을 보냈다. 걱정을 한가득 안고 무작정 호텔 밖으로 나와 걸었다. 파리의 겨울 공기는 시리다.

온종일 흐리고 비가 흩뿌리며 스산함이 온몸을 감싸기 일쑤다. 흩날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비하켐 다리로 향했다. 영화 '인셉션’의 배경이자, 가장 예쁜 에펠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 흐린 하늘, 자욱한 안개, 뼈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보였던 에펠은 정말이지 흉물이었다. 이 실망감도 여행의 일부이겠지. 실망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우울감을 온몸으로 마주한 채 오랑주리로 향했다. 버스에서 한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Excuse me. Do you know the way to Orangerie?" 마침 그곳으로 가고 있었던 터라 동행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미술관답게 아침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관광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며 그 까무잡잡한 피부에 맑은 동그란 눈을 가졌던 소녀와 스몰 토크를 나누었다. 나이, 국적, 취미 등을 나눴다. 그리고 서로 학생이라고 하며 전공을 물어봤다. '파키스탄 의대생’이라고 했다.

졸업을 앞두고, 인턴 수련을 하기 전에 짬을 내서 여행을 왔단다. 이런 우연이! 같은 목표, 같은 공부를 하는 또래 친구라 정말 빠르게 친해졌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고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오랑주리를 뒤로 하고, 골목골목을 걸었다. 고풍스러운 상앗빛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 그 사이로 밀려오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커피 한잔과 버터 풍미 가득한 크루아상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서 여유를 즐겼다.

빠알간 머플러를 한 할아버지와 같은 색의 빨간 베레모를 쓴 백발의 할머니가 손을 꼭 잡고 느긋하게 걷는다. 고운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는 거리의 한 꽃집 앞에 멈추어 선다. 아직 덜 핀 노오란 튤립 몇 송이를 신문지에 곱게 싸서는 할머니에게 쥐여준다.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장면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빠리 그 자체였다.

절로 미소 지으며 그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새겼다. 그 후 노을이 질 때쯤 센강에서 바토무슈를 타고 봤던 에펠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정각마다 화려한 빛으로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던 에펠. 수많은 사람 속에서 넋을 놓고 바라본 밤의 화이트 에펠은 정녕 낭만의 도시, 빛의 도시파리였다.

요새도 힘에 부칠 때면 지난겨울 파리를 떠올린다. 사진들을 들여다볼 때면 그때의 공기가 떠올라 추억에 잠긴다. 누군가 말했다. "여행의 목적은 다른 게 아니라 환상을 없애는 것"이라고.

그렇다. 처음 마주했던 파리는 내 오랜 꿈속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괴리되어 있었다. 그 괴리와 낯섦으로 힘들어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두려움을 이길 만큼 낭만적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자유분방함, 무언가 모를 무질서 속에서 느껴지던 예술감. 정형화되어있지 않은 그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참 좋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콧대가 높아 불어를 못하면 불친절하게 대한다'는 소문들을 듣고 걱정했던 나 자신이 무색해질 만큼 파리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하기도 했다.

나비고를 사지 못해서 끙끙대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젊은 프랑스 청년, "Merci" 하며 웃어주는 게 습관화되어있는 따뜻했던 그들의 모습에 감동하던 며칠을 보냈다. 우연히 마주한 순간들, 스치듯 만났던 인연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스함이 사무치게 좋았다.

드넓은 세상을 누비며 여행할 때면 참 느끼는 것들이 많다.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행이 참 좋다. 짧은 순간들이지만, 창밖의 풍경들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감성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그런 순간들. 좋아하는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고, 그 감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이 항상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순간의 냄새, 노래, 풍경들을 떠올릴 때면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는 순간이 많아 애틋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런 감정들을 섬세하게 기록하면서 혼자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들이 요새 자꾸 든다.

일기장, 메모장을 하나 가방에 넣어두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글을 쓰고, 읽으며 며칠을 고민하며 보내는 나날들이 좋다. 머지않아 이런 선물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길 소원한다. 이번 겨울, 그 자유로움과 낭만을 담뿍 느끼러 또 한 번 빠리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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