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실손보험과 관련된 이슈가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고, 문제삼는 치료행위 종류만 바뀔 뿐이지 정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 역시 담당 사건목록에 실손보험 관련 민·형사 사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유지되고 있으며, 다양한 학회나 의사회로부터 요청받는 강의 주제 역시 상당 부분 실손보험에 관한 것이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수년 간 실손보험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뤄본 변호사로서, 실손보험 관련 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의사회 법제이사로서,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시점에 실손보험과 맞닿아 살아가고 있는 의료인들을 위해 졸속한 글이나마 작성해보고자 한다.
먼저 실손보험 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백내장' 사건이다. 백내장 수술 관련 고액의 보험금 지급이 이어지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은 실손보험사들이 의료기관이나 환자에 대해 수많은 민사 사건, 압수수색까지 수반한 엄중한 형사 사건 등의 분쟁을 일으켰다. 나아가 금융감독원 등 주무부처에 대한 민원, 실손보험 표준약관 반복 개정, 국회 관련 입법 발의 등의 이벤트들이 이어졌다.
이렇게 다양한 주체와 쟁점들이 얽혀서 어지럽게 흘러가던 백내장 분쟁은 2022년 초 백내장 관련 입원치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내려지면서 상당한 파장이 생겼다. 많은 실손보험사들은 위 판결과 이어지는 대법원 판결(심리불속행 기각)을 근거로 환자에 대해 보험금 지급거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환자들의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이라는 2, 3차 분쟁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작년 9월 경 필자가 수행한 실손보험 사건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백내장 관련 입원치료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실손보험사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이후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환자측은 각종 분쟁에서 위 판결문을 적극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면, 법원이 모순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입원치료와 관련한 주된 대법원 판례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법원은 위 판례의 법리를 각 사건에 적용하여 합당하게 판단하고 있다. 즉, 동일한 방법의 수술이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수술의 경과나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입원치료의 필요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하여 전문가인 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하며, 실제 입원을 하지 않았거나 입원의 필요성이 없었음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면, 입원치료가 부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합당한 의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백내장 수술에 대해 입원치료를 시행한 의료기관이라면, 실손보험사 측의 문제 제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볼만 하고, 필자는 위와 같은 논지를 통해 관련 형사사건에서도 전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다음 통증 치료 분야로 시선을 돌려보자. 통증 치료에 있어 실손보험 분쟁이 가장 많은 건 아무래도 '도수치료'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백내장의 경우 '사실상 시력교정술임에도 백내장 수술로 포장하고 보험금을 청구한다'는 식의 문제제기라면, 여기에서는 '사실상 건강마사지임에도 도수치료로 포장하고 보험금을 청구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손보험사 측 문제제기의 틀이 크게 바뀌지 않았듯이, 이에 대한 대응도 크게 바뀔 필요는 없다. 즉, 충실한 의학적 근거를 통해 법리적 주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지면상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가령 도수치료는 기본적으로 보존적 치료인 점, 해당 환자에게 통증 경감 등 도수치료의 의학적 목적이 달성된 점, 횟수를 제한하는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필자는 위와 같은 논지로 대응하여, 도수치료 뿐만 아니라 체외충격파 치료나 MRI 검사 등 통증 분야 사건에서 나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발달장애아동 치료비용'이다. 비교적 최근에 실손보험사에 의해 문제 제기된 분야인데, 발달장애 치료 과정에서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 검사가 시행되면서 상당한 치료비가 보험료로 청구되었고, 이에 실손보험사는 의사가 아닌 치료사의 불법 의료행위라는 점 등을 이유로 지급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분쟁 과정에서 충실한 의학적 근거를 통해 법리적 주장을 해야한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필자의 경험을 지면상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가령 의사의 지휘·감독 하에 치료사의 놀이·미술 등 적절한 의학적 근거를 가진 치료가 이뤄졌다는 점, 의료법상 소아청소년과가 아니거나 대학병원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아동에게 적절한 발달장애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건은 최근에 문제 제기된 분야인 만큼 다른 건처럼 유의미한 결과가 충분히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지면을 빌어 간략하게나마 대표적인 실손보험 분쟁 동향과 그 대응방법에 대해 작성해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일의적인 참고사항일 뿐이고, 실제 분쟁을 접할 경우 사안마다 사실관계가 다르고, 기준이 되는 약관 내용도 다르므로, 전문가의 세밀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편 분쟁 중에는 학회나 의사회에서 자정 대상으로 평가하는 악의가 다분한 보험사기 사례도 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보험사기가 성립할 여지가 있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대응 방법은 앞서 기재한 사례와 전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조력을 구할 것을 당부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되기 이전에, 의료인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정의 노력을 하여 분쟁의 소지를 줄이는 것이다.
의료인들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고, 특히 개원가에서 느끼는 부담은 더욱 클 것이라 생각된다. 본 기고문이 어려운 의료 환경에서, 특히 개원한 의사들이 환자-실손보험사 등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안정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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