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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은 정치적 문제가 아닙니다

경북의대 본과 1학년 제형준
발행날짜: 2025-01-20 05:00:00

경북대 의과대학 본과1년 제형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26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원점에서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드디어 각 학교의 현장 교육 여건을 고려해보겠다고도 말했습니다. 교육과 수업 문제로 고민했을 의대생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아직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26년도 의대정원 '감원'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25년부터 마주할 교육환경을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해부용 시신(카데바) 수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의대 교육과정은 강의식 수업만으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의대생은 해부실습을 거치며 인체 구조를 익혀야 합니다. 경북대학교는 2개 학년(예과 2학년, 본과 1학년)이 기간을 나누고, 학년 내 오전/오후 분반을 나누고, 한 분반에서 8명씩 카데바 1구를 가지고 실습합니다. 시신 1구를 32명이 나눠 사용하는 식입니다.

매년 약 450구의 카데바가 전국 의대의 해부학 교육에 활용되므로, 2000명 확대를 강행한다면 매년 전국에 카데바가 270구 더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는 "힘을 합쳐서 시신을 마련해보자" "시신을 수입해오겠다"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해라"라고만 말합니다. 시신 기증 윤리, 검역·전염병, 시뮬레이션(?) 해부실습에 따른 교육 질 저하가 심히 우려됩니다.

두 번째로, 병상 수가 부족해 임상실습이 불가합니다. 카데바로 해부실습을 하며 인체의 구조를 익혔다면 병원에서 가서 환자들을 직접 대하는 임상실습을 거쳐야 합니다. 학생 한 명이 제대로 실습 교육을 받으려면 10개 병상이 필요한데, 현재 대학별 부속병원 병상 수로는 증원된 학생들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25학번과 유급한 24학번 의대생들이 총 7500명으로 교육 가능한 수준의 2.5배입니다. 그들이 본과 3학년이 되기 전까지 4년 안에 전국 모든 대학병원 규모를 2.5배로 확장시킬 수 있겠습니까? 원광대학교는 학생의사 1인당 1.5개 병상을 갖추고 있어 원래도 임상실습 환경이 열악했는데 이제는 1인당 0.9개 병상이라는 놀라운 실습 환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해부도 못 해보고, 환자도 못 만나본 의사들이 배출됩니다.

25년도부터는 의대생을 제대로 교육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포함해서 정부가 인정해야 합니다. 한 해에 3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데 25년도에 7500명을 동시에 교육해야 합니다. 피해를 최소화할 유일한 방법은 26, 27학년도 의대 정원을 '감원'하고 25학번과 유급한 24학번을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께서는 26학년도 감원도 대화 주제로 올려놓자고 결단해주십시오. 그것이 원점 논의이고 의대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 요건입니다.

의대 정원은 '합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양보해서 좋게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 여건에 대한 가능/불가능의 문제입니다. 정보는 초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폭증을 모두 건강보험으로 감당할지, 건강보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료이용률을 얼마나 낮춰야 할지에 대한 미래의 고찰에 실패했습니다. 모든 의료는 필수의료인데 왜 '기피과'가 생기는지와 지역의료가 왜 붕괴하는지에 대한 과거의 고찰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무엇보다도 증원 규모가 현재 가지는 비현실성을 계속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민 1인당 의사 외래 진료 횟수 (2020) 자료 출처:보건복지부

의료란 '여론'을 좇을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론을 따라 의료를 설계해온 결과 이상한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은 사회화 된 의료를 시장의 수요대로 배분하기 때문에, 환자의 본인부담률이 의료보장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데도 의료 이용이 타 국가에 비해 엄청나게 높습니다. 환자는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인지할 수 없는데 이용에 제한이 없으니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탓입니다.

의료를 무제한으로 이용하기를 원하는 여론을 따른 결과 우리의 건강보험은 곧 고갈될 예정입니다. 또한 한국은 국민이 불편하고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진료권(의료의 지역 제한)을 폐지하였습니다. 이루 의료 수요와 의료기관은 수도권으로 집중되었고, 의료의 지역화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번 사태에서도 여론에 따라 의대 정원을 밀어붙이는 동안 교육 파행은 철저히 외면되었습니다.

한국이 이미 많이 망가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도저히 한국 의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사회에 가장 오래 몸담을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26년도 의대 '감원'을 결단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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