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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산불은 왜 공중보건의 위기인가

고상백 교수
발행날짜: 2026-02-02 05:00:00

고상백 원주의과대학 교수

산불, 이제는 건강 재난이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재난의 형태로 현실이 되었다. 폭염은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집중호우는 도시의 기반을 붕괴시키며, 감염병은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재난이 있다. 바로 산불이다.

산불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고온, 가뭄, 강풍이라는 기후 조건이 겹치면서 산불은 점점 더 자주, 더 넓게, 더 오래 발생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산불 시즌’이 길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강원 영동 지역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는 매년 반복적으로 대형 산불을 경험하고 있고,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숲의 손실이나 재산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산불은 이제 자연재난을 넘어, 명백한 공중보건의 위기(public health crisis) 로 이해되어야 한다.

산불연기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산불이 발생하면 우리는 흔히 하늘을 뒤덮은 연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연기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인체에 직접적인 손상을 일으키는 독성 혼합물이다. 산불 연기에는 미세먼지(PM2.5, PM10),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오존, 벤젠,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중금속 등 다양한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호흡기와 심혈관계, 면역계 전반에 영향을 준다.

국내에서 수행된 강원도 산불 연구(Yonsei Med J 2022; 63(8):774-782)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후, 피해 지역 주민들의 입원 의료이용은 인접 산불 미발생 지역에 비해 유의하게 증가했다. 특히 산불 발생 후 3개월 시점에서 의료이용 증가가 가장 두드러졌으며, 그 영향은 1년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산불은 ‘당장의 사건’이 아니라,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건강을 침식하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는 재난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영향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고령자, 만성질환자, 특히 기저질환을 가진 집단에서 의료이용 증가 폭이 훨씬 컸다. 기저질환 보유자의 경우 산불 3개월 후 의료이용 증가 위험이 1.4배 이상 높았다. 산불은 보편적 재난이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는 재난이다.

미국에서는 산불을 관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에 보건학적 민감집단으로 어린이, 임산부, 고령자, 호흡기·심혈관 질환자, 저소득층, 고위험 직업군 등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 집단들은 생물학적으로 취약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취약하다. 정보 접근성은 낮고, 대피 여건은 열악하며, 보호장비를 충분히 갖추기 어렵고, 의료 접근성도 제한적이다.

그 결과 산불은 단순한 환경재난이 아니라, 기존의 건강 불평등 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회적 재난’이 된다.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이란 결국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위에서 발생하는 건강 위기인 것이다.

핵심은 사후 대응이 아니라 체계적 시스템 구축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산불 대응은 주로 산림·소방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진화 장비, 헬기, 방화선 구축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민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 현대 재난보건관리의 핵심은 산불 발생 후 대응이 아니라 체계적 시스템 구축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다음 네 단계로 구성되어야 한다.

첫 번째, 예방(Prevention)이다. 산불 고위험 지역의 건강 취약지도 구축, 민감집단 사전 파악, 지역별 노출 위험 평가, 실시간 대기질 감시체계 구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평상시에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디가, 누구에게,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대비(Preparedness)이다. 산불 경보 체계와 건강경보 체계의 연동, 보건소·의료기관의 대응 프로토콜 마련, 민감집단 행동지침 교육, 지역 의료 네트워크 구축, 보호장비 확보 등이 필요하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평상시에만 가능하다.

세번째 대응(Response)이다. 산불 발생 시 실시간 노출평가, 위험 지역 주민 대피 권고, 응급진료체계 가동, 취약계층 집중 모니터링, 심리지원 체계 가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불 진화'가 아니라, '건강 보호'가 대응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

네번째는 회복·관리(Recovery & Management)이다. 산불 이후에도 의료이용 증가가 수개월 이상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는, 장기 건강영향조사와 추적 관리가 필수임을 보여준다. 코호트 구축, 만성질환 악화 모니터링, 정신건강 관리, 지역 보건체계 복원은 재난 대응의 일부이지, 부가적 서비스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통합과 기획, 교육과 훈련, 협력 네트워크, 소통, 과학적 근거 확보, 자료 수집, 인권과 인도주의 관점이 결합된 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곧 산불 대응이 특정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중보건 거버넌스 전체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불은 며칠이면 진화된다. 그러나 기침은 남고, 숨참은 지속되고, 만성질환은 악화되며, 불안과 트라우마는 사람들의 삶 속에 오래 머문다. 연구가 보여주듯, 의료이용 증가는 1년 이후까지 지속된다. 재난은 끝났지만, 건강 위기는 계속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산불을 '환경 문제', '산림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다. 이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불은 명백히 공중보건의 위기이며, 기후위기 시대의 대표적 건강 재난이다. 앞으로 산불 대응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불을 껐는가"를 넘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건강을 지켜냈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불탄 숲을 복원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오래 걸리는 것은, 불에 노출된 사람들의 몸과 삶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렇기에 기후위기 시대의 산불 대응은 소방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문제이며, 사회의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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