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의약분업 3년 이대론 안된다
의약분업이 시행 3년을 맞았다. 도입 여부를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제도는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해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됐지만, 건강보험 재정파탄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는 항생제 오•남용이 줄어드는 등 일정부분 성과를 얻었으며 안정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실패한 분업으로 단정짓고 전면 철폐 및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3주년을 평가하고, 제도의 정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5회에 걸쳐 점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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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탄: 끊이지 않는 논란
제2탄: 기대효과는 달성됐나
제3탄: 분업후 나타난 부작용들
제4탄: 각계의 분업 평가
제5탄: 새로운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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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간 담합
2000년 복지부가 의약분업 위반 감시단을 운영한 이래 2002년까지 총 9만4,217건의 병의원과 약국 담합 의혹사례를 조사, 이 가운데 56건만이 행정처분 조치를 받았다. 비율로만 보면 0.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사례다.
물론 이를 두고 의약담합이 근절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복지부 관계자조차도 “금품수수를 전제로 한 의약담합은 아주 예외적이고 결정적인 증거가 입수되지 않는 한 실체를 밝히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단속으로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실제 의약담합이 얼마나 광범위 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도리 없다.
의약분업이란 것이 단순히 제도 정비와 단속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돼야 한다.
그러나 의약담합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개원의들은 일부 제약회사의 담합유도를 꼽는다.
강서구의 한 이비인후과 개원의는 “현실적으로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 인근 약국에 비치하도록 종용한 제품들을 처방하지 않으면 환자들이 가장 먼저 불편을 겪는다”면서 “의약담합을 근절하려면 의사나 약사들을 단속하기에 앞서 먼저 제약회사들부터 강력히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 부담 증가
정부는 의약분업 이후 빚더미에 올라앉은 보험재정을 메우기 위해 2001년 7월부터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 차등수가제 등을 도입, 실질적인 수가인하를 단행했다.
그러나 보험재정적자가 계속되자 결국 일반약의 보험 적용을 제외시켜 약제비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인상, 그나마도 박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훼손하고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주원인을 제공했다.
지난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1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 1년동안 도시 근로자의 한달 평균 지출은 4.5% 증가한 반면, 보건의료비 증가율이 25.1%로 모든 소비항목 가운데 가장 높았다. 사회보험료(의료보험·고용보험)는 21.6%로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조세연구원 김종민 전문연구위원은 지난 4월 22일 ‘건강보험의 장기 재정부담’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의료비와 건강보험 지출이 소득을 1.21배 앞질러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의약분업이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득규모나 여타 소비항목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 지출은 의약분업 실시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왜곡된 의료체제가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지속적으로 가중시키고 있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고가약 처방 증가
의약분업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가약 처방비율의 증가추세는 멈출줄을 모른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36.24%를 차지했던 고가약 비율은 2001년 1월 53.48%, 2001년 7월 55.91%를 기록한데 이어 저가약 조제 인센티브제 시행 이후인 2002년 2월 잠시 주춤했다가(48.39%) 3월 부터 다시 50%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또 9월 복지부에 따르면 동네의원의 진료건당 약품비(외래 기준)는 2000년 5월 6,040원에서 올 4월 1만339원으로 42% 증가했으며 특히 진료건당 약품비는 분업초기인 지난해 1월 9,240원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동네의원의 고가약처방 비율을 보면 2000년 5월 36.24%에서 2000년 1월 53.48%, 2001년 8월 53.9%, 올해 3월 50.85%, 4월 52.85% 등으로 드러나, 보험재정 악화원인으로 작용했다.
고가약 처방 증가추세는 일반병의원 뿐 아니라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구체적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2002년 4월 복지부가 23개 보건소를 조사한 결과 원외처방하는 의약품은 고가약으로 처방하는 현상이 두드러져 행정지도를 받았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분업 이후 환자들이 약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고가약 처방을 요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을 했다.
2차 병원 붕괴와 병원장의 자살
의약분업 이후 2차병원의 부도ㆍ폐원신청은 계속 늘어났다.
서울 방지거 병원을 시작으로 목포 카톨릭, 부산 고신의료원, 김해 복음병원, 성남 인하병원 등이 문을 닫았고 최근 경영난으로 음성 성모병원장이 음독 자살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떠올랐다.
폐업병원 한 관계자는 "의약분업 이후 약가마진이 없어지고 환자들은 진료비가 저렴한 1차의료기관이나 시설이 더 나은 종합병원만을 찾게 돼 중소병원의 경영난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원협회 관계자도 "현제도에서는 2차 의료기관과 1차 의료기관이 경쟁상대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의료전달체계의 심각한 오류로 정책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2차 의료기관은 1차 의료기관에 비해 진료비 환자부담율이 높고 지켜야할 시설기준도 엄격하지만 1차병원과 병상수는 불과 1개차이라며 일반 개원가와 경쟁체제에 놓여있지만 정부의 규제는 더욱 엄격해 2차병원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2차병원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원내약국에서 일반약국과 동등한 수가조제와 더불어 외래환자 조제시행과 1차병원과의 환자 자기부담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을 저해하는 복지부의 행정편의주의 정책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는 2차 병원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원가 과당 경쟁
최근 의료기관 및 종사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상근 의사 수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초구의 경우 3백50여 곳의 중소 병원이 난립해 있고 강남구의 경우 의료인력이 8천명에 이른다.
또한 인구밀집 지역과 유동인구가 많은 주택,상가 밀집지역에는 병의원들이 서로 들어가려고 혈안이 된 상태다.
의료기관 컨설팅 업체인 플러스클리닉은 개원 입지관련 문의사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개원과 이전문제에 대한 상담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의과대학 인허가 남발에 따른 것으로 의료인력이 과잉공급돼 의약분업 후 줄어든 수입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과다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의사인력 수급관련 조사에 따르면 일시에 의과대학 정원 600명을 감원한다고 해도 2012년이면 의사인력의 공급초과 현상이 일어난다.
이 잉여인력들이 보험재정의 파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의약분업으로 인해 어려워진 병원에 봉직하는 것보다 대부분 개원을 선호함으로써 개원가끼리 생존경쟁은 날로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
한 개원의는 "한 건물 건너에 같은 진료과목의 병원이 포진한 형국에서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고가 의료장비를 구입한다"며 "요새 서비스 경쟁은 기본이며 상대방 비하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 붕괴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신뢰가 결정적으로 무너졌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2001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가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협상카드의 하나로 활용했고 최근까지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권용오 인천시 의사회장은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정부가 의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했듯이, 최근에는 감기심사원칙, 진료비 삭감, 영수증 발급 등으로 부족한 건강보험재정을 메우면서 의사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
의약분업 때는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특권을 지키려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 했다면 지금은 ‘의사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이 낸 보험재정을 갉아먹는다’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단기적으로 보험재정을 벌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의사와 환자의 신뢰’라는 의료행위의 핵심적 요소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건강 식품 시장의 급성장도 사실 그 이면에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지면서 병에 걸리거나 몸이 허약해지면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민간요법 혹은 만병통치약을 방불(?)케 하는 건강식품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의료계 내 직역, 세대, 진료과별 갈등
한 개원의는 "분업 후 낮아진 수가와 없어진 약가마진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진료과목 뿐만 아니라 다른과목까지 함께 진료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말한다.
'O'비뇨기과 전문의는 "분업 후 진료과목을 양다리 걸치는 행태가 늘어 여러 질병들을 두루 볼 수 있는 가정의학 전문의가 인기를 얻고 있다"며 "가정의들의 진료범위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다른 전문의들의 진료시장이 점점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학병원이나 조건이 좋은 병원에는 의사수가 넘치는 반면, 대우가 좋지 않은 중소규모의 병원은 인기과목의 봉직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조건이 좋은 병원에 있거나 개원해서 잘되는 의사들과 봉직의로 일하며 중노동에 시달리는 의사들간의 의견차이와 갈등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30대의 한 개원의는 "의사들간 가장 골이 깊은 갈등은 단연 의약분업 전 세대와 분업 후 세대간의 갈등"이라며 "선배들은 젊은 의사들을 돈만 아는 의사라고 비판하고 있고 젊은 의사들은 선배들이 의약분업에 제대로 대응치 못했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고 한다. <제4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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