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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법의 문제점

주수호
발행날짜: 2005-09-20 06:47:08

주수호 원장(주수호 외과의원)

보건복지위 소속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의 주도로 의원 입법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의 윤곽이 지난 10일 언론을 통하여 알려졌다.

의료분쟁조정법은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환자 및 보호자들이 용이하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하에 추진되어 왔다.

한편 의료계에서도 심지어는 불가 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무방비로 당해온 의료진 및 병원당국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하에 의료분쟁 조정법의 제정을 기대해왔다.

합리적인 '의료분쟁 조정법'이 제정되면 의료진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의학적 판단 하에 소신진료에 임할 수 있으며 결국은 환자들의 권익이 보호된다는 취지이다.

어쨌든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은 국민 및 의료진 모두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정되어야만 한다.

일단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무조건 병원 당국 및 의료진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환자 및 환자보호자들의 압력에 시달린 의료진들이 어쩔 수 없이 자구책으로 방어진료, 과잉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의료진 및 의료소비자인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전제 하에 '의료분쟁조정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을 통하여 접한 이기우의원이 의원입법 중인 법률안의 내용은 심히 우려스러운 내용이었다.

기존의 쟁점 사항들 (예를 들어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vs 임의적 조정전치주의,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문제, 형사처벌 특례 인정에 관한 쟁점 등등)은 그동안 여러 분들에 의해 지적된 바,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두 가지만 지적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이기우 의원측에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의료분쟁조정법'이라는 명칭을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규제에 관
한 법률'로 개칭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분쟁조정'이라는 부정적 표현대신 의료서비스이용자의 시각에서 법률의 명칭을 바꾸겠다는 것이 이기우 의원측의 법률명 개칭에 대한 설명이다.

도대체 '분쟁조정'이라는 용어가 어째서 부정적 표현인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종류이던 (그것이 검사이던 수술이던 ) 의료서비스를 받은 환자 및 보호자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오던가 의학적으로 발생 가능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더라도 일단 닥치면 의료진 및 병원에 대한 원망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심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가 의료진 및 병원당국의 과실이라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의료진 및 병원당국의 잘못이라고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그러한 연유로 과실입증이 되기 전까지는 '의료분쟁'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 행정부 및 입법부에서도 법률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안의 명칭은 '의료분쟁조정법'이라는 것에 동의하여 지금까지 '의료분쟁 조정법'이라는 법률안의 명칭이 통용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10일 알려진 이기우 의원이 의원입법 중인 법률안의 명칭이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으로 개칭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의료분쟁 조정법'의 제정 취지에 크게 어긋나는 법률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법률안의 명칭은 그 법률안의 내용을 축약하여 보여 주는 것인 바,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은 환자는 피해자 의료진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의료분쟁의 피해자는 환자측만이 아니라 의료진 및 병원 당국도 될 수 있으며, 이미 그러한 예를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의료진 및 병원 당국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 항력적인 합병증이 발생하여 환자를 잃은 경험을 우리는 직, 간접적으로 겪어 왔다.

최선을 다하여 진료한 환자가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 환자나 보호자 분들의 슬픔에 비견되지는 못하겠으나, 의료진의 상심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심지어는 이러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동안 의료진의 성의를 다한 진료를 인정하고 불가 항력적인 합병증이 발생한 사태는 환자가족만이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매우 불행한 사태라는 것을 이해하는 환자 가족이 점차로 줄어 들고 있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일단 합병증이 발생하여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에는, 그 합병증이 의학적으로 불가 항력적인 합병증일 가능성이 농후하더라도, 환자는 피해자 의료진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불가항력적인 합병증이나 부작용으로 인한 환자의 악화에 대해 의료진이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은 역으로 의료분쟁의 또 다른 피해자는 의료진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이기우 의원은 직시해야만 한다.


의료사고의 주범으로 매도되어 병원은 폐업되고 가정은 풍비박산된 이후에 부검을 통하여, 법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었음이 입증이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법적 제도적 보호장치가 결여된 상태에서 의료진의 자구책인 방어진료와 응급진료의 회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의 법률안이 의료진은 가해자, 환자측은 피해자라는 선입관을 줄 수 있는 명칭으로 출발해서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과실 책임 입증자의 주체를 의료인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이 법률안에 따르면 과실입증책임의 주체를 피해자가 아닌 의료인으로 규정하고, 의료인이 직접 조정기관인 피해구제위원회에서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해야 면책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시 과실 유무의 입증책임이 환자측에서 의료진에게 옮겨가는 추세에 있다고는 하나 ( 이러한 추세가 올바른 방향성인지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를 법률안에 규정하여 모든 의료분쟁의 무과실 입증을 의료진에게 하라는 것은 법률에 의한 의료계에 대한 폭력에 다름 아니다.

불가 항력적인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라도 환자 가족 (이들이 모두 환자 가족인지도 의심되는)의 병원내 난동과 진료방해에 대해서 경찰력조차도 소극적인 대처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응급실에서 진료하는 의료진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 대한민국 의료현장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수가가 설사 의료진의 과실이 밝혀진 경우라 하더라도 환자측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및 환자가족( 환자 가족을 빙자한 이상한 단체의 회원 등)의 폭언 및 폭행에 대해 거의 무방비로 당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일단 환자측이 문제를 삼기만 하면 이에 대한 무과실의 입증을 의료진이 하도록 법률로 규정한다는 것은 의료진의 방어진료조장, 응급진료 기피는 물론이거니와 의료의 특성상 의료분쟁의 소지는 모든 진료마다 개연성이 있기에 추후 법정에서 무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검사 및 진료를 남발하도록 이 법률이 강제하고 있다는 것을 이기우 의원은 깨달아야 한다.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환자측에 대한 적절한 보상 및 의료분쟁에 대한 환자측 및 의료진간의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의료분쟁조정법'은 의학적 판단에 따른 소신진료를 보장하는 제도로 발전되어 늘어만 가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방어진료, 응급진료 회피 및 과잉진료, 과잉검사를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 결국 국민, 의료진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아주 훌륭한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기우 의원측이 추진 중인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의 법률안은 일부 시민단체 및 국민들에게는 일시적으로 호응받을지 모르나 결국 의료진의 방어진료, 응급진료 및 고난이도의 진료를 회피하게 함으로서 대한민국 의료의 파행을 가속화시키고 결국은 국민에게 해로 작용함을 인식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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