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고 밝히자 의료계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한의료윤리학회 최보문(가톨릭의대) 교수는 21일 메디칼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우울증 정기검진을 실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의철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 대한임상건강증진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도 의료윤리학회와 뜻을 같이하고, 공동 성명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정신건강서비스 이용실태. 최근 복지부는 이를 근거로 정신건강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우울증 정기검진을 제시했다.
앞서 복지부는 내년부터 우울증 등 주요 정신질환에 대해 정신건강검진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등 정신건강서비스가 적절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정부의 이 같은 사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 여부를 확인하는 설문지 내용에 따라 환자군으로 포함되지 않아야 될 일반인이 치료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학적인 도움 없이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만한 우울감을 자칫 우울증으로 확대해 진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울증 증상을 보인 환자군이 늘어난만큼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당장 의료인력이 투입될 것이고, 불필요한 약 처방을 늘어나면 결과적으로 건보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시보(placebo) 효과의 반대말인 노시보(nocebo) 효과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노시보 효과란 누군가의 말에 인해 병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가령, 의사가 "당신은 우울증이다"라고 말했을 때 정상적인 사람도 마치 우울증이 걸렸을 때와 유사한 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자칫 의학적인 치료 없이 간단한 상담이나 기분전환 만으로 괜찮아질 수 있는 일반인에게 약물을 복용하게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영국에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검진을 철폐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최보문 회장은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의료자원의 낭비"라면서 "가벼운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을 치료하다가 진짜 치료받아야 할 환자를 놓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비용 또한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들은 약을 복용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울감을 가져온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인간관계의 문제 등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하지 않은 채 약에만 의존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최근 우울증으로 가족 동반자살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의학적으로만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사회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짚어보고, 상담센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은 구체적인 방향성이나 방법은 의료계 등 관련 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칠 계획이라며 유동적인 입장을 취했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정신보건 실태파악을 한 결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정기검진을 제시한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관련 기관 및 단체와 추가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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