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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료만 할 줄 아는 의사…왜 독배를 강요하나"

안창욱
발행날짜: 2012-03-06 17:50:42

G병원 23억 부당청구 환수, 도산 위기 "끝까지 진실 가릴 것"

"독배를 마셔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나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이지 사기꾼이 절대 아니다."

부산의 G병원 H원장의 말에서 절박함과 분노가 느껴졌다.

H원장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제가 보기에도 제 사정이 딱해 보인다. 마음을 열고 제 말 좀 들어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현재 G병원은 개원 5년만에 언제 도산할지 모를 낭떠러지에 서 있다.

H원장은 지난해 사기 및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그러자 건강보험공단은 23억원을 환수해 갔다.

H원장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1월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 2천만원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행정법원은 그 다음달 공단의 환수처분이 정당했다며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H원장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H원장의 장인은 우리나라 신장이식사에 한 획을 그은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장인 밑에서 의술을 전수 받았고, 2007년 200병상 규모의 G병원을 개원했다.

그는 자신이 원장이긴 하지만 오직 진료에만 전념했고,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진료와 경영을 분리한 것이다.

그러던 지난해 3월 갑작스럽게 경찰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내부 고발이었다.

경찰은 H원장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입원환자 식대 요양급여 중 직영 가산금 사기죄를 적용했다.

G병원이 식자재 납품업자인 H씨에게 병원 식당을 위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대 직영가산금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영가산을 받기 위해 영양사, 조리사를 G병원 소속으로 두되, 이들의 급여 및 4대 보험료를 H씨가 운영하는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관리해 실질적으로 위탁 운영했다는 혐의다.

G병원은 약제비 요양급여 중 복약지도료·조제료 사기 및 약사법 위반 혐의도 추가됐다.

G병원 근무약사인 C씨의 경우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해 마약류 의약품만 관리한 채 의약품을 조제하지 않았고, 약사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들이 실제 조제하면서 공단으로부터 조제료를 지급받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부산지방법원은 G원장을 포함한 병원 관계자 3명에게 각각 2천만원을 선고했다.

건강보험공단의 환수 처분은 G병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G병원이 2007년 7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식대 가산료 산정기준(영양사 가산, 조리사 가산, 선택식단 가산)을 위반했다며 5억 4천여만원을, 무자격자 의약품 조제에 따른 약값 및 조제료 17억 6천여만원을 환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여기에다 공단은 G병원이 응급실 전문 당직의사가 아닌 아르바이트 의사에게 야간과 주말 응급실 근무를 시켰다며 1300여만원 환수처분을 내렸다.

G병원은 이같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경찰도, 검찰도, 재판부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H원장은 "정말 약사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 한 명을 채용할 수 있었고, 월, 수, 금요일 주 3일간 출근하면서 실제 조제 업무를 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병원은 의사, 약사 모두 약을 조제할 수 있는데 의사의 지시를 받아 조제 보조원이 약포지에 포장하는 게 위법행위냐"면서 "공단이 직영하고 있는 일산병원도 약무보조원이 근무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억울해 했다.

특히 G병원이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심각한 약사 인력난의 책임을 왜 의료기관에만 전가시키느냐는 점이다.

심평원이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에 근무하는 전체 약사수는 1244명.

반면 당시 병원협회가 집계한 병원급 의료기관은 2222개였다. 이 중 병원이 1341개, 요양병원이 881개다.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병원은 1인 이상의 약사를 두되 100병상 이하는 주당 16시간 이상의 시간제 근무 약사를 둘 수 있다.

요양병원은 1인 이상의 약사 또는 한약사를 두고, 200병상 이하는 주당 16시간 이상의 시간제 근무 약사나 한약사를 둬야 한다.

따라서 이 통계만 놓고 보더라도 약사가 근무하지 않는 병원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약사 구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보건사회연구원 오영호 연구원이 병협 병원경영연구원이 발간하는 병원경영정책연구지 최근호에 게재한 '의약분업과 약사인력 수급전망' 보고서만 보더라도 약사 인력난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오 연구원은 약사 공급이 2010년에는 적어도 2726명에서 많게는 4056명, 2025년에는 4662명에서 6431명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당수 병원에 약사가 1명 내지 2명 근무하는데, 이런 병원에서 약사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제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주 40시간 근무제, 야간 조제, 연월차, 휴일 및 공휴일까지 감안하면 200병상급 의료기관은 최소 8명의 약사가 근무해야 정상 조제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약사 1명이 연월차를 모두 포기하고 주간, 야간, 휴일, 공휴일까지 모두 출근해 조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G병원 관계자는 "현재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약사 조제료는 월 평균 500만원"이라면서 "약사법을 지키기 위해 약사를 8명 고용하면 월급은 누가 주느냐"고 항변했다.

이런 약사 인력난, 비현실적인 수가 등을 감안하지 않고, 더군다나 약사, 의사가 조제하고, 환자에게 투약한 의약품의 원가까지 모두 환수하는 것은 횡포라는 주장이다.

G병원은 병원 식당을 위탁운영했다는 혐의도 완강히 부인했다.

G병원 관계자는 "영양사와 조리사를 직접 채용했고, 월급과 4대 보험료 등을 모두 병원에서 지급했는데 정산 방식만 놓고 위탁이냐, 직영이냐는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야간 및 주말 응급실 아르바이트의사 채용 역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의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H원장은 "지역 응급환자와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만성신부전 환자들의 응급 상황에 대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응급실을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방 중소병원은 의료인력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응급실 당직 의사 인력난은 정말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하지만 지역사회에 봉사하자는 뜻에서 월 2천만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을 유지해 왔는데 어느 날 1300만원을 사취한 사기 피의자 신분이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H원장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이런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는 오전 6시 30분 출근해 병동을 라운딩하고 진료실로 내려와 환자식으로 아침 끼니를 해결한다. H원장과 인터뷰하기 위해 들어선 진료실 구석에도 아직 치우지 않은 밥, 반찬 그릇이 있었다.

점심 식사도 환자식이다.

왜냐고 물었더니 "환자 식단도 점검해야 하고, 환자가 너무 많다보니 도저히 밖에 나가 먹을 형편이 안된다"고 말했다.

외래진료도 월~토요일부터 매일 본다. H원장이 쉬는 시간은 목요일 오후가 유일하다.

"이걸 사기라고 한다면 바로 잡겠다"

그렇다고 버젓한 집 한채를 장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사는 집은 1억원이 안되는 30평형대 빌라가 전부다.

그는 "내가 적게 벌더라도 행복하면 된다. 일년 내내 진료만 하고 살아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효율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장사를 하라는 게 아니냐"면서 "단지 이런 것을 가지고 사기꾼이라고 한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10원 한푼도 착복한 게 없는데 사기를 쳤다고 한다. 나도 인간인지라 고통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진료를 못할 지경"이라며 "이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독배를 마시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진리는 우리가 항상 추구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몫"이라면서 "대법원까지 가서라도 진실을 가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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