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제도 개편은 필요하다. 하지만 신포괄수가제도를 정식 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포괄수가제도를 놓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도의 불확실성, 불안정성, 비효율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신포괄수가제는 포괄수가와 행위별 수가가 혼합돼 암질환 등 복잡한 질환을 포함해 전체 입원환자에 적용 가능한 새 지불제도를 말한다.
한국병원경영학회는 18일 춘계학술대회를 열고 '병원 경영 관점에서 바라본 신포괄지불제도'라는 주제로 토론 시간을 가졌다.
"1차, 2차 시범사업 해봤더니…"
강중구 진료부원장
정부는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을 대상으로 2009년부터 신포괄수가제 1차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3차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다.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2009년 4월부터 2010년 6월까지 1차,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2차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시범사업 결과 진료비 총액이 행위별수가보다 더 높았고, 환자 부담금은 줄었다. 하지만 병원 경영인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었다.
일산병원 강중구 진료부원장에 따르면 1차 시범사업 결과 행위별수가보다 총진료비는 3.1% 늘었고, 보험자 부담금이 9.9% 늘었다. 반면 환자 본인 부담금은 7.9% 줄었다. 비급여 부담금은 16.9%나 줄었다.
강중구 부원장은 "1차 시범사업에서 진료비 안정화나 지불절차 간소화를 효과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다. 앞으로 대상 질환 및 시범사업기관 확대를 고려하면 병원 경영에 막대한 재정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차 시범사업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총진료비는 2.2% 늘었고, 보험자 부담금도 8.1% 늘었다. 환자 본인 부담금은 9.4%나 줄었다.
강 부원장은 "신포괄수가제가 앞으로 많은 논란과 난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장기적,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의료계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병원에도 적용해봤더니…"
지영건 교수
차의과학대 예방의학교실 지영건 교수는 신포괄수가제를 하고 있지 않는 병원에 모형을 적용해 일산병원의 결과와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 교수는 "신포괄수가제를 적용하면 입원 환자의 재원일수와 의료서비스 제공량이 줄어야 한다. 하지만 재원일수는 신포괄수가제를 하는 일산병원에서 오히려 더 길게 나왔다"고 결과를 밝혔다.
그는 이어 "일산병원 의사들이 병원 경영 측면에서 행위량, 재원일수 등을 줄여야겠다는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행위별수가제 때 하던데로 똑같이 처방하니까 재원일수, 행위량이 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 교수는 단가 10만원 이상 행위, 약제, 치료재료는 비포괄대상으로 설정한 것과 비급여 항목에서 발생하는 허점도 지적했다.
그는 "10만원 설정 기준이 불확실하다. 신포괄수가제가 일본 모형이기 때문에 1만엔을 따라한 것 같다. 하지만 수가라는 것이 매년 1~2%씩이라도 올라가는데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비급여 수가는 병원이 정할 수 있는 건데 일산병원 비급여 단가를 다른 병원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불체계 가는 방향에는 이의 없다" "공급자 적극 참여해야"
포괄수가제, 신포괄수가제도 개편은 세계적 추세이며 방향에는 이의가 없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나왔다.
병원경영학회 조우현 회장(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은 "시범사업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이뤄진 신포괄수가제 연구는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는 어렵다. 시스템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하고 불안정하다. 틀을 정교화하고 합리화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유럽국가들은 100% 지불체계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포괄수가제를 하고 있다. 제도를 어떤식으로 다양화해서 수용하냐는 문제이지 가능 방향에서는 이의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진료비 편차 문제가 여러군데서 나왔는데 행위별로 인정해 주는 부분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면서 묶어나갈지에 대한 논의과정이 필요하다. 환자분류체계도 주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형선 교수(왼쪽)와 이상규 교수
단국대 예방의학교실 이상규 교수는 병의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보다 더 확실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제도자체를 거부한다기 보다는 불확실하다는 것을 거부하는 측면이 많다. 경영과정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확실한 기전을 알 수 있으면 대비를 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제도가 상당히 복잡하고 얽혀있기 때문에 의구심을 키우고 주저하게 되고 참여를 꺼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신포괄수가제는 추가적인 행정부담이 있는 제도라고 지적하며 공급자들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일산병원은 이미 제도에 훈련된 사람들이 많아서 순항되고 있지만 시범사업을 하지 않았던 병원에 적용하려다하니 추가적인 행정, 인력 소요가 너무 많다. 이를 일방적으로 병원에 떠맡으라고 하는 구조가 적합한지에 대해 병원장들의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또 "현재는 공급자 의견이 안들어갔다. 병원도 자료를 만들고 참여하는 게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건강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힘들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할 때"라고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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