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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보에서 싹튼 의사들의 분노, 정치세력화로 점화

안창욱
발행날짜: 2012-09-21 07:10:45

back to the 의료계87년 수가인상, 2000년 분업 철폐 총궐기

<메디칼타임즈>는 의료계의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Back to the 의료계'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지난 13일 의협(회장 노환규)는 서울역에서 의사 회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악법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날 의사들은 "국가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의협은 서울역 광장에서 의료악법 규탄대회를 열었다
100년 넘게 이어온 의료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을 정도로 투쟁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인 대정부 투쟁 역사를 보면 우선 1955년 '한지의사' 승격 반대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일제 때 면허를 얻어 각 지방에서 제한된 의료활동을 하던 한지의사들은 일정한 수련후 의사면허를 받기 위해 지방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지의사 승격운동'을 벌였다.

결국 1955년 국민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사회분과위를 통과하자 의료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그러자 의협은 반대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각 시도의사회와 분과위원회, 전국의대학장회의를 소집해 반대여론을 조성하고 의대생까지 동원해 궐기대회를 갖기도 했다.

1956년 1월 한지의사 승격을 골자로 하는 국민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강력한 저지운동을 폈고, 몇일 후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료법 개정 법률이 부결돼 국회로 반송되면서 무산시켰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줄곧 비현실적인 의료수가가 의료계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정부는 수십차례 수가를 올렸지만 매번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결정돼 의사들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시대가 열리면서 의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당시 의협은 1989년을 전후해 의료보험수가 인상을 위해 국회 앞 대규모 시위, 지정서 반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시의사회는 심사기구 독립, 의보수가 조정 등을 요구하면서 각 구별 서명운동과 지정서 반납을 천명했고, 이런 불씨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1987년 10월 연판장 서명회원은 개원회원과 봉직회원을 합쳐 1만 350명에 이르렀다.

의약분업, 의사들의 의권쟁취투쟁 점화

1964년 보건소법 개정 등 3개 악법 개정문제를 둘러싸고 의협이 시위를 벌인지 25년 만에 1989년 2월 24일 의협은 긴급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의료보험법 개정 성명서와 의결문을 채택하고 요양취급기관 지정서 반납, 일시 휴진 등 강력 대응방침을 정했다.

이어 대의원 200여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철폐 등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에는 정부가 유사의료행위 양성, 간호사 진료행위 일부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의료계를 자극했다.

의협은 의료법비상대책위를 가동하고, 치협, 한의협, 간호조무사협 등과 공조해 2007년 2월 11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의료법 개악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 궐기대회에는 약 3만명이 운집했고, 의협은 의료법 저지를 위해 무기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의료법 개정안은 17대 국회 임기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의약분업 시대 개막은 의사들의 의권쟁취투쟁, 정치세력화에 불을 질렀다.

1999년 11월 30일 올바른 의약분업쟁취를 위한 범의료계 결의대회가 열린 장충체육관. 결의대회에는 약 3만명이 참여했고, 이들은 가두행진까지 벌였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의사들의 대규모 시위는 그간 정부의 저수가 정책을 비롯한 지나친 간섭에 대한 의사들의 분노로 폭발했고, 의권쟁취투쟁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땜질처방식 의료정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다.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분노는 집행부 불신임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유성희 의협 회장이 2010년 1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 295명 중 157명의 불신임으로 사퇴했고, 의약분업을 바로 잡기 위한 '의권쟁취투쟁위원회'가 발족했다.

2000년 의약분업 철폐 집회에는 의사 4만여명이 참여했다
의쟁투 출범 두달 후인 2010년 2월 17일 의협은 전국 의사 4만명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궐기대회를 여의도광장에서 열고, 3일간 전국 병의원 휴진을 결의했다.

의약분업 시행을 목전에 둔 2010년 6월 8일에는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 전국의사결의대회가 열렸다.

과천집회에는 전공의, 의대생까지 가세했다.

정부는 과천집회 직후인 16일 수가 9.2% 인상을 제시했지만 의사들은 이를 거부하고 20일부터 전면폐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그 와중에 김재정 의협회장, 한광수 서울시의사회장, 신상진 의쟁투 위원장, 최덕종 부위원장 및 의쟁투 집행위원들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의약분업 시행 직후인 8월 31일에는 의대 교수, 의대생, 전공의, 개원의, 봉직의 등 4만여명이 장대비를 맞으며 서울보라매공원에 집결해 '의료개혁 원년 선포식'을 가졌다.

의협은 의약분업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한계를 깨닫고 본격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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