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A씨. 그는 3개월 여 봉직 자리를 찾아 헤매다 결국 선배가 운영하는 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월급이 500만원에 불과하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인턴 사원'이기 때문이다.
"채용 공고를 보고 연락하면 100% 엔도(Endoscope, 위 내시경)나 소노(Ultrasonography, 초음파검사) 가능하냐고 물어봐요. 하지만 요즘 전공의 때 내시경 제대로 배우기 쉽지 않죠. 결국 펠로우를 들어가던지 선배한테 빌붙어 배우던지 둘 중 하나라도 해야 그나마 원서라도 내볼 수 있다는 뜻이에요."
몇 년전만 해도 수억원대 연봉을 자랑하던 전문의들. 하지만 이제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연봉 1억원이 붕괴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대학병원들마저 두손 들게 만든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봉직시장에 전문의들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 억대 연봉 옛 말…외과 계열 중심 1억원 붕괴
이러한 현상은 봉직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채용시장의 바로미터, 바로 내과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과 4~5년전만 해도 내시경과 초음파검사가 가능한 내과 전문의는 2000만원 선에 월급이 정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1000만원 초중반에서 월급이 결정된다. 과거에 옵션으로 여겨졌던 내시경과 초음파검사는 이제는 필수사항이 된지 오래다.
서울 동대문구의 B병원은 내과 전문의를 Net 월 1100만원에 구하고 있다. 조건이 주 6일 근무에 일 80명 외래 진료라는 점에서 여유로운 자리도 아니다.
경기도 안산의 C병원도 비슷한 조건이다. 이 병원은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모두 가능한 전문의를 조건으로 1300만원의 월급을 내걸었다. 신규 전문의는 원서조차 낼 수 없다는 뜻이다.
A씨는 "적어도 엔도와 소노, 콜론(colonoscopy, 대장내시경) 중에 하나는 가능해야 자리를 구할 수 있다"며 "신규 전문의가 자리를 구하려면 이보다 100만~300만원 정도 월급을 낮춰 잡는 것이 기본 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통 펠로우 2년차를 끝내면 월 1천만원 초중반대라고 보면 된다"며 "몇몇 병원에서는 1500만원 이상 부르는 곳도 있지만 막상 가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그나마 내과는 꾸준히 수요가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외과 계열들은 정형외과 등 일부 전문과목을 제외하고는 수요 자체가 없다. 자리만 생겨도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울산의 D병원은 외과 전문의를 월 800만원에 구하고 있다. 그것도 숙소에 거주해야 하며 응급 콜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9600만원. 전문의 연봉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억원이 깨진 것이다.
가정의, 일반의에게 1억원은 희망연봉…인기과도 주춤
가정의학 전문의와 일반의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1억원은 희망 연봉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다.
부산의 E병원은 일반의를 월 600만원에 구하고 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7200만원이다. 경남의 한 요양병원도 마찬가지. 월 600만원을 조건으로 채용 공고를 내걸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사실상 일반의들과 큰 차이없는 선에서 연봉이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대다수 병의원들은 채용 공고를 낼 때 가정의학 전문의 또는 일반의라는 조건을 내걸어 의사를 모집하는 것이 현실이다.
연봉이 2억~3억원 선에 육박하던 정신과,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의 몸값도 주춤하는 추세다.
최근 몇 년간 요양병원과 정신병원 사이의 스카웃 전쟁으로 급등했던 연봉이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라도 광주의 F병원은 월급 1400만원을 내걸고 재활의학 전문의를 모집하고 있다.
강원도의 G병원도 마찬가지. 입원환자 관리와 통증 치료가 가능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1500만원에 구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몸값이 예전같지는 않다.
경북의 H병원은 입원환자 관리 없이 외래만 보는 조건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월급을 1200만원에 책정했다. 또 다른 I병원도 70명 입원환자 관리를 조건으로 1600만원의 월급을 제시했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월 2000만원 이하로는 채용 공고조차 내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채용업체 관계자는 "최근 대학병원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정리된 펠로우 인력들과 매년 배출되는 신규 전문의들, 개원했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전문의들까지 쏟아져나오면서 봉직시장이 사상 최대로 과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전문의들이 몰려 나오다 보니 연봉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지사"라며 "경기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점 더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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