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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오락가락…"투쟁 목표도 없이 전쟁 시작했나"

안창욱
발행날짜: 2014-01-15 06:43:43

대정부협상 임박했지만 요구안도 미정 "준비된 게 없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노환규)가 대정부협상단을 구성,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총파업까지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대정부 협상안으로 제시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어 의협이 목표도 없이 전쟁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의협 비대위 노환규 회장은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대정부 협상단장에 임수흠 서울시의사회 회장이자 비대위 부위원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의협 비대위 노환규 위원장(사진 우측)과 임수흠 협상단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비대위는 협상 아젠다로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 의료제도 개선 등 4가지로 정했다.

또 아젠다별 TF를 구성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제안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와 함께 비대위는 보다 큰 틀에서 장기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 또는 총리 직속의 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추가로 요구할 계획이다.

비대위 방상혁 간사는 "정부가 협상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힌 만큼 진정성을 믿고 협상하는 동안 강경한 투쟁을 가능한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방 간사는 "의료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만큼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날 의협 기자회견에서 노 회장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노 회장은 "이미 3월 3일 총파업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에 시일이 굉장히 촉박하고, 단기과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환기시켰다.

단기과제란 원격진료, 영리병원 반대와 같이 복지부와 협상해야 하는 안건을 의미한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이들 단기과제에 대한 협상 결과가 한달 안에 나와야 이를 토대로 약 2주간 파업 찬반 투표를 거쳐 3월 3일 총파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장기과제는 복지부 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가 협상에 참여해야 하는 안건이다.

단기과제에 대해 의정간 합의점을 찾으면 그 다음 단계에서 건강보험제도 개선 틀 마련,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등을 논의하자는 의미다.

노 회장은 "전공의 관련 문제도 복지부와 의료계가 협상할 수 있는 단기과제"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대정부 투쟁을 선언한 이후 대정부 요구안으로 일관되게 원격진료영리병원 반대,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개혁 등 3가지를 제시해 왔는데 갑자기 전공의 관련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기자가 "전공의와 관련한 협상안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앞으로 결정되면 공개하겠다"고 답했다.

아직 정해진 게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모 비대위 위원은 "그동안 개원의 중심 협상 아젠다만 생각하다가 투쟁 명분을 배가하기 위해 대학병원, 전공의와 관련한 쟁점을 집어넣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 비대위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대정부 투쟁, 총파업을 공공연하게 운운해 왔지만 정작 아젠다와 아젠다별 쟁점에 대한 내부 공감대가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임수흠 협상 단장은 "협상 아젠다가 여러가지가 있는데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는 비대위가 제시한 협상 아젠다를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내부적으로 무엇을 아젠다로 할 것인지, 아젠다별 대정부 요구안을 무엇으로 할지 이견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협상 단기과제와 장기과제 역시 모호하다.

비대위는 복지부와 단기협상을 통해 원격진료, 영리병원 문제를 다루겠다고 했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두가지 모두 복지부가 정책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이미 보건의료분야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누차 강조한 상황이어서 의협이 복지부 차관과 이들 사안을 협상하는 것 자체가 실익이 없는 넌센스라는 것이다.

의협은 그간 의료계와 정부, 시민이 참여하는 대통령 산하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잘못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하고, 의료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하자고 정부에 제안해 왔다.

이런 기조와 달리 이날 노 회장은 의정 협의체를 만들 것인지, 협의체에 시민대표도 참여하도록 해 논의의 틀을 확대할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의협은 대정부 요구사항의 하나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의료부문 철회를 꼽았다. 의료법인이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도록 하면 향후 영리병원의 단초가 된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었다.

반면 이날 노 회장은 "의료계가 영리병원 추진 중단을 요구했는데 무엇을 저지하고, 중단할 것인지 정의가 필요한데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 회장은 "또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폐지할 것인지, 기재부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을 전면 폐기하라고 요구할 것인지 내부 컨센서스를 만들어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문제이고, 정부에 무엇을 요구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총파업을 선언한 것인지 선뜻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다.

모 비대위 위원은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한 것도 없이 파업을 외친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다른 비대위 위원은 "의협이 확실한 투쟁 목표도 정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한 꼴"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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