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료분쟁조정제도 시행 2주년을 맞아 의료분쟁의 효율적 조정 방법 등을 논의키 위해 지난 28일 백범기념관에서 '의료분쟁,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러나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참여가 미미한 의료분쟁조정제도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외면한 채 조정·중재의 방법론적 논의에만 치중한다는 의료계의 지적이 높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조발표를 맡은 의료중재원 정해남 상임조정위원은 '의료분쟁의 특성과 조정기법'을 통해 ▲의료분쟁의 특성과 의의 ▲조정의 근본원리와 유형 ▲조정절차 각 단계에서의 구체적인 기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정 상임조정위원은 "조정기법이란 좁게는 조정위원이 행하는 개개의 대화기술이나 절차 진행 기술만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조정위원의 몸가짐, 사고방식 및 조정의 목적 및 조정위원의 역할에 대한 이대 등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정의 근본원리로 ▲자기결정의 원리 ▲공정성 ▲비힐책적 접근방법 ▲비공개적 비밀유지 ▲인터리스트 중심형 해결을 꼽았다.
정 상임조정위원은 "자기결정의 원리는 조정을 다른 절차와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며 "조정은 소송이나 중재와 달리 본질적으로 당사자가 자기 책임에 기한 결정을 행하고, 조정위원이 이를 도와 자기 결정을 극대화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조정의 목적과 성공에 대한 해석도 금전이 아닌 분쟁 당사자의 심리적 만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정의 목적과 조정의 성공에 대한 해석을 금전지급을 내용으로 한 합의 성립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며 "분쟁 당사자의 실체적, 절차적 및 심리적 만족에 초점을 맞춰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함영주 교수는 '분쟁해결방법론의 발전방향과 조정에서의 교착상태 해결방법'을 통해 의료분쟁 조정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조정기법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함 교수는 "조정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위한 조정이라는 기본 철학이 정립돼 있어야 한다"며 "기술만 앞세운 조정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조정 당사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함 교수는 "당사자의 입장보다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상실의 고통을 비롯해 당사자의 체면과 명성 등도 잘 살펴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당사자는 조정절차에서 배제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함 교수는 "당사자가 자기 주장만 하고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 할 경우 조정인이 당사자를 조정절차에서 배제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며 "조정은 당사자들이 행하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절차지만 절차진행에 관한 상호 간의 약속을 어기는 당사자의 절차위반에는 흔들림 없이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의료계는 조정·중재방법에 대한 논의에 앞서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그동안 접수된 조정·중재 신청 중 피신청인의 동의를 받아 조정이 개시된 건수는 지난 2년간 912건인데 비해 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아 각하된 건수는 1292건이나 됐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서는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조정참여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불가항력 분만의료사고 보상 등을 이유로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에 불만이 큰 산부인과 참여도 없었다.
의료중재원 관계자는 "의료계의 참여 등에 대한 내용은 지난해 세미나에서 실시한 바 있다"며 "올해는 조정을 어떻게 잘하느냐의 방법적인 부분과 관련된 세미나이기 때문에 따로 부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의료중재원의 세미나와 관련한 공문을 받은 적 없고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현행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가 의사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도가 의사들에게 상당히 불리하다"며 "감정단의 경우 의료전문가로 구성해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의사들이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를 신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정의 방법에 대한 논의보다는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참여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의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후 조정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에 대한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의료분쟁조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의 부재"라며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은 의료중재원에 조정을 맡기면 불리할 것이라는 신뢰에 문제가 있어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의료중재원 감정부에는 의료인이 한두 명 밖에 없고 심지어 조정부에 의료인이 없이도 조정이 이뤄진다"며 "이런 이유로 의료인들은 억울하게 강제로 조정을 당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불신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중재원의 인적구성 개선 등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 회장은 "조정부나 감정부의 인적구성이 의료계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이상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이같은 문제를 해결키 위한 노력을 선행한 후 조정 방법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중재원 인적 구성에 대한 논의가 안 된 상태에서의 조정 방법에 대한 논의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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