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내세우나 속은 변변치 않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진료비확인 부스를 보면 마치 양두구육 같다는 느낌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심평원 서울지원과 공동으로 매달 둘째주 수요일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시민청에서 '진료비확인제도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진료비확인 부스는 매년 증가하는 의료비 지출과 관련해 관련 의료소비의 주체인 시민에 대한 보호와 참여를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서 만난 심평원 서울지원 관계자 역시 진료비확인제도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진료비확인 부스는 도무지 실효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합리적인 의료비 지출을 위한 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또는 그러한 제도를 알리기 위해 정부 기관이 나서는 것은 좋다고 치자.
그렇다면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한달에 한번, 그것도 겨우 두시간 운영하는 진료비확인 부스를 굳이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하는 이유에 대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근 기자가 진료비확인 부스를 방문했을 당시 현장에 있던 심평원 관계자에 따르면 1시간 30분 동안 총 19명의 시민이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진료비확인을 요청한 시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상담'만 받은 것이다. 1시간 30분 동안 19명에게 1인당 평균 4.7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진료비확인제도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했을지 의문이다.
만일 시민에게 진료비확인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이 있었다면 서울역이나 터미널을 비롯해 명동, 신촌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택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이같은 장소를 두고 굳이 어둡고 유동인구도 적은 '서울시청'에서 진료비확인 부스를 운영하는 속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특히 의료계 일각에서는 진료비확인 부스가 오히려 의사와 시민 간의 불신만 조장한다는 지적이 높다.
진료비확인제도는 심평원 홈페이지에도 안내가 돼 있고 업무주체도 심평원이다.
시민이 진료비확인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시민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닌 심평원의 부족한 홍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심평원이 부족한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시에 업무협의를 제의했다면 서울시는 시청공간을 내줄 것이 아니라 시민이 북적이는 거리로 안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같은 점에 비쳐볼 때 시청 안에 자리잡은 진료비확인부스는 실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민분들, 병의원에서 진료비를 더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꼭 확인하세요"라는 식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고, 의료계도 바로 이 부분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민 중에 자신의 의료비 지출에서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적정 진료비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런 국민에게 무작정 진료비를 확인하라는 것은 모든 의료기관과 모든 의사의 행위에 대해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과 다를 바 없다.
국민에게 우선돼야 할 것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어떻게 흘러왔고 현재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급증하는 의료비 지출을 완화하고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아울러 적정한 의료비 수준과 의료의 질에 대한 국민적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이해라는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단순한 금액적인 접근은 오해와 불신만 심화될 뿐이며 오히려 국민을 숫자의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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