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벌써부터 서울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의료계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는 지난 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268만 9806표를 얻어 206만 9224표를 얻은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공공의료정책이 서울시 개원가 등 의료계와의 마찰을 빚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재임 기간 중에도 의료계와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보건의료정책은 세이프약국, 보건지소 확충, 야간․휴일 진료서비스 추진 등이다.
서울시가 '세밀하고 이용하기 편리한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동네약국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세이프약국은 지난해 4월부터 10월 중순까지 6개월간 도봉구·구로구·강서구·동작구 등 4개구 48개 약국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됐다.
세이프약국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금연클리닉 연계사업 ▲자살고위험군 조기발견을 위한 자살예방 게이트 키퍼 역할 ▲주민 약력관리 및 상담 등 세 가지다.
의료계는 "흡연은 암을 포함한 수 많은 질환과 관계가 있고, 다른 나라들은 니코틴의존증 이라는 질환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특히 자살은 정신과적 응급상황으로 고도로 훈련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대처하기 힘든 질환인 만큼 약을 파는 약사들에게 자살예방 게이트키퍼를 맡긴다는 것은 코미디 같은 발상"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80여개 약국에서 세이프약국 시범사업 추진에 나섰다. 시범사업 대상 지역도 강북구와 중구 등 2개 구가 새로 추가해 총 6개구로 늘렸다.
1차 시범사업에 대한 주민 참여율을 비롯해 실효성 및 개선점에 대한 전문가적 논의없이 2차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전시성 졸속행정이라는 의료계의 비난이 높은 상황이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 중 의료계가 가장 반대하는 것이 보건지소 확충이다.
지난 2012년 7월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서울형 보건지소 75개를 신규 확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공의료마스터플랜 '건강서울 36.5'를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는 "자치구별 공공보건 인프라를 인구 5~7만명당 1개소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2014년까지 중‧소형 보건지소 75개를 신규 확충해 시민들이 집 앞 가까운 곳에서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보건지소 확충에 소요되는 예산은 일반 보건소보다 작은 표준형 보건지소는 25개소로 각 개소당 15억원이, 표준형보다 작은 참여형 보건지소는 50개소로 각 개소당 10억원으로, 총 875억원이 투입된다.
현재 서울시에는 총 20개의 보건지소가 운영 또는 개소가 확정된 상태이다. 다만, 연내 75개의 보건지소 확충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운영하거나 설치 중인 보건지소는 총 20개"라며 "공모를 통해 자치구의 응모를 받아 진행하는 부분이라 연내에 75개소를 확충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털어놨다.
박 시장의 이번 선거 공약은 ▲보호자 없는 병원 1000병상 확대 ▲공공노인요양원 30개소 설치 ▲중증외상센터 설치를 통한 도시재난 응급의료체계 구축 등으로 보건지소 확충 부분은 제외돼 있다.
이와 달리 일부 서울지역 의사들은 선고 공약에는 없더라도 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재임시절 추진했던 도시보건지소 확충을 그대로 이어나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보건지소 확충은 기간의 문제일 뿐 사업이 중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A 의원 원장은 "만일 박 시장이 연임에 실패했다면 더 이상의 보건지소 확충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며 "연임에 성공한 만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계획을 접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도 박 시장이 보건지소 확충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보건지소를 연말까지 75개를 확충하기는 힘들겠지만 박 시장님이 재선에 성공한 만큼 보건지소 확충에 대한 의지는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박 시장이 보건의료정책을 포퓰리즘이 아닌 전문성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이재호 의무이사는 "기존에 의료계가 반대했던 방향성과 마찬가지로 보건지소 확충에 절대 반대한다"며 "박 시장의 보건의료정책은 세이프 약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문적인 의료분야를 포퓰리즘적으로 푸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이 지금까지의 행보를 이어갈 경우 의료계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이사는 "앞으로 정책이 나와봐야 알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뭐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과거 의료계에서 반대했던 부분을 지속한다면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서울시의사회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23일 서울시장 후보자들에게 ▲보건소 및 보건지소 운영 ▲서울시 시립병원 운영 ▲사무장병원 및 의료생협 ▲세이프약국 시범사업 등의 정책 질의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서울시의사회 조연희 의무이사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답이 오지는 않았다"며 "서울시의사회는 시가 보건지소를 확충하는 것에 적극 반대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에 비해 의료기관 접근성이 높은 서울의 특성상 보건지소 확충은 선심성 행정에 가깝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조 이사는 "보건지소는 의료혜택이 어려운 취약지를 위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서울은 무의촌이 없다. 의료비도 중증질환이 아니면 의원급에서는 많이 나오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보건지소 확충은 선심성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소 및 보건지소가 민간의료기관과의 경쟁구도에서 벗어나 예방이나 교육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예방과 교육에 집중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 민간의료기관과 자꾸 경쟁구도로 가는 게 문제"라며 "그러나 그런(진료에 대한) 생각을 접지는 않을 것 같다. 지역 일차의료기관들과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시민단체 일각에서도 서울시 보건지소 확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의료 강화정책은 지역적인 특성에 맞춰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김영훈 경제실장은 "공공의료는 접근방식의 차이가 있는데 박 시장의 접근은 서울보다 지방에 적합한 방식"이라며 "보건지소 확충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에서 개원가를 대신하는 컨셉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시 보건지소 확충 정책은 개원가와의 마찰만 일으킬 뿐 시민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김 실장은 "한 두 곳 정도의 보건지소 확충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대규모 확대는 개원가와 마찰을 피할 수 없다"며 "박 시장은 보건지소 확충이 아니라 의료급여 환자 등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보건지소 확충은 개원가의 저항을 야기할 뿐 공공의료 확충과 큰 상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시는 보건지소에서 진료 기능은 배제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새로 들어서는 보건지소는 진료기능을 빼고 만성질환 관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처음에 세웠던 노원보건지소 경우 진료기능이 있었지만 새로 확충하는 곳은 진료기능이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보건지소가 동네의원의 환자를 뺏어가는 일을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보건지소가 의료기관의 환자를 뺏는다는 부분이 있었다"며 "새로 들어서는 보건지소는 앞으로도 진료기능을 빼고 건강증진센터 개념으로 갈 것이기 때문에 동네의원이 환자를 뺏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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