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사업장에서 인력 부족으로 인해 임신 여성 근로자 열명 중 두명 가까이 유·사산을 경험하고 있으며 간호부의 임신순번제 관행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유지현. 이하 보건노조)는 2014년도 산별중앙교섭 및 지부 현장교섭 준비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3월 20일부터 5월 20일까지 두 달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보건노조는 전국 62개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1만 8263명의 여성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 실태 ▲직장생활 만족도 ▲노동환경(노동조건, 노동과정, 모성보호, 건강) ▲노동조합 활동 평가 및 현안 ▲산별교섭 요구안 ▲ 국회 입법 과제 등을 조사했다.
'임산부 및 모성보호 실태' 조사 결과, 임신 여성 근로자의 일일 평균근로시간은 9.8시간, 법으로 금지된 야간근로 유경험자 비율은 21.9%로 나타났으며, 유·사산 경험도 18.7%로 파악됐다.
특히 간호부의 경우 가임기에 있는 간호사들이 임신의 순번을 정하는 '임신순번제'를 실시하는 비율도 17.4%로 집계됐으며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모두 20% 이상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노조에 따르면 임신순번제는 주로 부서장의 지시 하에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거나 임의적으로 임신을 하게 될 경우, 근무표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직무스트레스 증가로 타 부서로 이동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보건노조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임신순번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보건의료사업장 여성노동자의 노동현실이 그만큼 열악하고 심각한 수준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계획조차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성보호 측면에서 육아휴직 사용비율 또한 매우 낮은 편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으며 공공병원 17.6%, 민간병원 12.6%로 민간병원에 비해 공공병원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이 높았다. 출산후 조기복귀 유경험 비율도 12.3%로 나타났다.
보건노조는 "보건의료 여성노동자의 임신부 보호 및 모성보호가 이토록 취약한 이유는 인력부족 때문"이라며 "법 위반 사항에 해당하는 임신부의 야간근로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고, 육아휴직과 생리휴가 사용율이 낮은 것은 최소한의 모성보호조차도 보장되지 않을 정도로 인력부족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9월 25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노동자가 근무시간을 하루 2시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제 시행 역시 실효성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보건노조는 "임신한 여성노동자가 직접 사용자에게 근로시간을 단축해달라고 신청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인력충원을 하지 않아 노동량이 줄지 않은 상태에서는 동료에게 업무를 전가하게 되므로 눈치가 보여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보건의료 사업장은 24시간 3교대 근무로 운영되는데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의 특수성과 이에 따른 인수인계시간을 고려해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한 근무형태와 인력충원이 보장돼야 하는데 이같은 조치 없이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건노조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임신과 출산의 자율권 보장 ▲출산 및 육아휴직에 대한 대체인력 보충 ▲수유·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보육지원시설 의무적 설치 ▲여성노동자의 생리적 문제에 따른 건강권 확보 ▲임신기간 근로시간단축제도 정착을 위한 여성가족부 면담 ▲모성보호 사각지대인 보건의료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위반사례 조사와 시정을 위한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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