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의원 앞 좁은 계단에는 아이를 태우고 온 유모차들이 줄을 서 있고, 엄마들은 1시간 30분의 대기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아파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다.
돌아보면 간호조무사 2명과 시작한 개원 초기에는 어렵기도 했으나 성실하게 최선의 진료에 힘을 기울인 결과 지역에서 환자를 잘 본다는 입소문이 났다.
이후 혼자서는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라 개원 3년째부터 부원장을 한명 고용하고, 직원도 5명으로 늘렸다. 의사가 한명 더 늘었는데도 차등수가제 삭감액이 줄었고, 진료시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상황은 금방 변했다. 주변에 야간진료, 주말진료까지 하는 병원이 생기고 입원이 가능한 아동병원도 생겼다. 예방접종을 덤핑하는 병원도 점점 많아졌다.
개원 9년 되던 해. 6년간 같이 일하던 부원장이 조심스럽게 "환자가 점점 줄어 함께 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제반 비용을 고려할 때 실수입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 그의 폭탄발언이 고맙기도 했다.
특히 개원 초기에 비해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월세도 오르고, 직원 월급도 올랐으며, 성실신고제도로 세금도 올랐다.
보통 환절기에 환자가 많이 몰리는 소아청소년과 특성상 이 때 수입으로 환자가 없는 달의 수익을 대신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환자가 많은 성수기 달이 2~3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경영은 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차등수가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환자가 없는 달은 차등수가제로 인한 삭감액이 없지만 환자가 많을 때는 300만원이상 삭감을 당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성수기마저 차등수가제 때문에 여유수익분이 삭감돼 버리는 꼴이다. 심지어 많게는 한달에 800만원까지 삭감을 당하기도 했다.
동네의원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거나 특이한 의술이 있어서 환자를 모으는 진료 행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성심성의껏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과 조언을 해주는 동네 사랑방, 주치의의 개념이다. 동네의원 진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자들은 하루에도 여러군데의 병원을 내원할 수 있을 정도로 수가가 싸다.
이런 동네의원에게 75명 이상의 환자를 본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깎는 것은 의사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보상을 뺏는 셈이다.
아파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죄송하지만 환자께서는 금일 76번째 환자이니 돌아가십시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수가 및 저출산 시대, 넘쳐나는 전문의 숫자, 상도덕 없는 무차별 개원과 진료시간 파괴로 의료시장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영유아검진인데도 불구하고 진료까지 요구하는 보호자가 많다. 이 때는 진찰료를 50%만 받게 돼 있는데 차등수가제를 적용하면 이중 삭감의 모순도 생긴다.
의사들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보상 마저도 뺏어가고 있는 차등수가제는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
[편집자주]지난 10일 서울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 원장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차등수가제란?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1일 평균 진찰횟수 75건을 기준으로 진찰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로 2001년 7월 시행됐다. 적정진료를 유도하고 특정 의료기관에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함이 목적이다. 진찰료는 ▲75건 이하 100% ▲76~100건 90% ▲101~150건 75% ▲150건 초과 50% 등으로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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