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사람의 머리에 비유하면 모로코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에 걸쳐 있어 이마 위쪽에 해당한다. 정식 명칭은 모로코왕국(Kingdom of Morocco)이고 수도는 수도는 라바트(Rabat)이다. 나라의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길이가 1835㎞에 달하며, 면적은 44만 6550㎢, 인구는 3265만명(2013년)이다.
전체 인구의 65% 이상을 아랍족이 차지하고,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35%, 그리고 흑인, 유럽인, 유태인 등이 일부를 차지한다.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지만 기독교나 유태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 아랍어를 공용어로 하지만 베르베르어나 프랑스어도 사용되고 있다.
3권을 분리한 입헌군주국이지만 3권 위에 왕권이 군림해왔다. 하지만 진취적인 성향의 무하메드6세 현국왕은 취임 이래 국민의 교육과 여권신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세계의 전통인 일부다처에 따르지 않고 현왕비만 두고 있으며 처음으로 왕비저하라고 부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경제개발에도 관심이 커서 탕헤르에서 카사블랑카까지 떼제베 공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인구의 57.3%가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생산물은 밀·보리·올리브유 등이다. 인광석·석탄·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세계 제1의 인광석 수출국이다.
일찍이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는 카르타고를 정복한 로마에 속하다가 7세기 후반 이베리아반도에서 밀려난 우마이야왕조와 이를 추격해온 아바스왕조 등 아랍세력들이 지배했다. 11세기에는 베르베르족 최초의 왕조인 알모라비데왕조와 이어 들어선 알모아데왕조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역과 사하라사막의 이남까지 세력을 확장한 제국을 이루었다.
스페인의 가톨릭왕국들이 연합한 레콩키스타가 결실을 맺어 이베리아반도에서 밀려났지만, 15세기 후반부터 모로코 본토를 침략하려는 유럽세력의 몇 차례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1912년에는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고, 1956년 독립하였다. 1961년 2월 국왕 하산 2세(Hassan Ⅱ)가 즉위하여 1962년 12월 입헌군주국을 선포하였다.
중세시대의 모로코 출신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온갖 과일들이 풍성하고, 흐르는 물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이라는 면에서 모로코는 최고의 나라이다.”라고 격찬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탕헤르에서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로 이동하면서 차창에 비치는 모로코의 모습에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탕헤르에 도착하기 전에 문화시설을 제외하고는 사진찍는 것을 조심하라고 가이드가 경고하는 것을 보면 꽤나 경직된 사회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5성급 골든 튤립호텔에서 모로코 전통음식이라는 꾸스끄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단단한 밀을 으깬 세몰리나를 다양한 야채 그리고 기호에 따라 소고기, 닭고기, 아랍인들이 좋아하는 새끼양고기와 함께 조리한 것인데, 이날 우리가 먹은 것처럼 샤프란을 넣는 경우도 있다. 신선한 샐러드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부식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는 가이드의 말이나, 배에서 내릴 때 만난 한국여행객들이 '모로코 음식이 환상이더라'면서도 걱정스럽던 표정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점심을 먹고 라바트로 가는 길은 눈 닿는 데까지 구릉 하나 보이지 않는 평야이다. 지평선 위로 부풀어 오르는 구름만이 다양한 풍경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때마침 가이드가 보여주는 DVD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베르베르족의 삶과 사하라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여행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사하라사막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래 전에 미국 유타에서 사막구경을 조금 한 적이 있지만, 한낮에 잠깐 차로 돌아본 것이 전부라서 사막을 제대로 느껴본 적은 아직 없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탕헤르를 출발해서 사막을 지나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사막은 끝없는 바람 소리와 침묵, 그리고 짐등들의 발굽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라는 느낌을 적었고, 동행하는 낙타몰이꾼은 "사막은 너무나 거대하고 지평선은 너무 멀리 보여요.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미미한 존재란 걸 느끼게 된다오. 그래서 오래도록 침묵하게 되는거요."라고 설명하는데, 낙타 등에서 흔들리며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막막할 듯하다.
하지만 사막의 밤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특히 온 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들이 손에 잡힐 듯, 아니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오래 전에 즐겨 부르던 가수 장미화씨의 <쓸쓸한 연가>를 부르면 제 맛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모래 위에 누워서 휘파람 불면 /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에 은하수 / 손을 흔들면 잡힐 듯한 그 모습 / 그러나 기약은 없네....”
라바트에서는 모하메드5세 왕의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일종의 왕릉인 셈인데, 경승이 좋은 산에 조성되어 있는 조선의 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외벽이 하얗게 빛나는 왕릉은 장방형의 아주 간단한 구조의 건물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을 따라 베란다 모양으로 통로가 나있고, 지하층에는 모하메드 5세 왕을 모신 묘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산2세 왕과 그 동생의 묘가 있다. 사방의 벽에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에서 만났던 화려한 이슬람장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양들을 볼 수 있다.
건물은 사방으로 나있는 문을 통해서 출입이 가능한데, 문 앞에는 신장 190cm의 근엄한 근위병이 서있고 요청을 하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모하메드5세는 모로코 사람들이 독립국왕이라 부를 정도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얻어내고 스페인이 지배하던 남부 모로코도 되찾은 국민적 영웅이다. 모로코 대부분의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는 모하메드5세거리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효성이 지극한 모하메드6세 현왕이 할아버지 모하메드5세, 아버지 핫산2세, 그리고 삼촌을 모신 왕릉을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왕이 오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라바트로 가고 있을 때 모하메드6세왕이 왕릉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일행이 라바트에 도착하기 전에 참배를 마치고 떠났다. 부친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께서 수원에 있는 융건릉을 자주 찾고 싶어도 노량진에 부교를 가설하기 위하여 거룻배를 차출해야하는 등 백성들의 삶을 고달프게 할 것을 걱정해서 자제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왕릉 앞에는 12세기에 이곳을 지배한 알모아데 왕조가 짓기 시작한 핫산탑이 미완성인 채로 서 있다. 이 탑은 세비야에 있는 히랄다탑과 쌍동이탑이라고 부를 정도로 꼭 같다고 한다.
왕릉을 나와 골목길을 한참 걸어서 도착한 카페에서 이곳에서는 멘따티라고 부르는 모로코 민트차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멘따티는 스피아민트 잎과 설탕이 들어가는 녹차의 일종으로 북서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마그레브(Maghreb)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즐겨온 차이다. 달짝지근하면서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마시고나니 피로가 절로 풀리는 것 같다. 카페에는 관광객들도 있었지만 모로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정에 쫓기는 우리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 역시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차를 마시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비가 한 차례 흩뿌린다. 이곳 날씨는 참 변화무쌍한 것 같다.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카사블랑카로 가는 길에 해가 졌다. 구름이 몇 점 흩어져있는 서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변하더니 어두워진다. 붉은 빛을 뿌리며 장엄하게 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석양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실망이었다.
인구 400만이 살고 있는 모로코 제2의 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인 카사블랑카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카사블랑카로 들어오는 도로는 차량으로 가득 차있었다. 카사블랑카의 호텔들은 대부분 수도관이 낡아서 양치는 물론 샤워도 위험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묵은 카사블랑카호텔에서 배정받은 방은 침대가 3개나 들어갈 정도로 넓었고, 에어컨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도착이 늦어져 체크인도 하기 전에 식사를 먼저 하게 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채수프에 이어, 삶은 소고기를 메인으로 하고 당근, 감자 등 야채를 삶은 것을 곁들인 밥이었다. 특별히 맛있다 할 수는 없었지만 여행을 무사히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온 음식을 모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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