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한달 째. 평택성모병원장(이기병)인 나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장이 됐다. '메르스 진원지'라는 낙인과 함께.
5월 15일. 바레인에 다녀왔다는 국내 최초 메르스 확진 환자가 우리 병원에 입원했을 때로 되돌린다면 어떨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5월 20일. 맨 처음 역학조사관이 찾아온 그 순간으로 되돌리고 싶다.
이기병 병원장은 인터뷰 중에도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학조사관 첫 투입…그때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사실 그때는 우리도 방역 당국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우리 병원에 36시간 입원했던 1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 갔다가 자리가 없어 인근 병원을 거쳐 다시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을 받을 때까지도.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을 받은 직후 병원에 투입된 1차 역학조사팀은 3명. 그들은 1번 환자와 밀접접촉한 의사, 간호사 등 10여명을 격리조치하고 돌아갔다.
당시만 해도 신종 감염병인 메르스에 대해 생소했다. 급히 인터넷 서핑을 통해 실체를 알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방역당국에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이대로 병원을 운영해도 괜찮겠느냐고.
그들의 답변은 명쾌했다. 세계적으로 3차 감염은 없으니 안심하고 일단 환자와 밀접 접촉한 의료진 등 10여명만 격리조치 하면 된다고.
하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1번 환자가 입원했던 8층 병동을 그대로 운영하는 것은 무리였다. 8층 간호사 상당수가 격리 대상자여서 인력도 부족했다.
일단 1번 환자가 있던 8층 병동(내과병동) 전체를 비우고 7층으로 이동시켰다. 당시 발열 환자 있었지만 입원 당시에도 폐렴 증세로 열이 있던 환자여서 큰 문제라고 생각 안했다.
게다가 정부 당국에서 혹여 메르스에 감염됐더라도 3차 감염은 없다고 하니 더 이상의 감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안심했다.
그때 정부가 3차 감염 가능성을 열어뒀더라면 지금의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격리된 의료진 이외에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사태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메르스 확진 환자는 걷잡을 수 번졌다. (1번 환자에게 감염된)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하면서 또 다시 역학조사단이 병원을 찾았을 땐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역학조사단은 1차 때와는 달리 격리대상을 50여명으로 확대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방역 당국에 코호트 격리를 제안했다. 더 이상의 감염은 차단하려면 모든 것을 우리 병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답변은 '코호트 격리는 규정에 없다. 환자를 전원 조치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조건 코호트 격리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정부에선 생소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긴박하게 돌아갔다. 코호트가 아니라면 병원 폐쇄가 답이었다.
가능한 빨리 환자를 전원해야했다. 문제는 '메르스'가 금기어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메르스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메르스가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병원은 비공개인 상황이라니. 개원 3개월밖에 안된 병원에서 병원 보수공사를 해야하니 다른 병원으로 가야한다니 환자들도 황당했을 것이다.
환자들 사이에서 '강제퇴원'이라며 항의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더 답답하다. 환자에게 메르스 감염 가능성에 대한 고지도 없이 퇴원시켜야 하는,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우리 병원은 29일 자진 폐쇄조치했다. 정부 지침은 없었다. 정부는 오히려 코호트 격리는 지침에 없다며 감염 차단 기회를 막았다.
더 이상의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지금 남은 것은 메르스 숙주병원, 메르스 1차 진원지라는 낙인 뿐이다.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볼 때마다 되새김질 한다. 1차 역학조사팀이 나왔을 때 코호트 격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병원 내 환자 그리고 일부 퇴원한 환자, 그리고 문병했던 가족까지 감염 가능성을 열어뒀더라면 지금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개원 3개월만에 메르스에 발목…어서 끝나기만을 바랄 뿐"
나 또한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13일까지 자가격리 상태였다. 아내는 미국에 있는 딸에게 잠시 가있으라고 했다. 병원 내 감염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0.01%의 가능성이라도 남기도 싶지 않았다.
자가격리 중에는 할일이 없으니 주로 TV를 봤다. 평소 바빠서 볼 생각도 안했던 케이블 영화도 돈 내고 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격리된 직원과 몇일 째 불꺼진 병원, 매일 늘어나는 확진환자 소식에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제 자가격리가 끝났으니 재개원을 검토하고 싶지만 아직 이르다.
당초 이달 28일까지 폐업 결정을 내렸을 때만해도 한달이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29일 재개원은 이미 물건너갔다. 7월 중에만 재개원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사실, 내가 평택성모병원을 선택한 것은 병원의 규모와 시설 때문이었다.
재작년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작년까지도 의대에 몸담고 있던 중 평택에 17개 진료과를 갖춘 종합병원장직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병원 규모며 시설을 보니 '한번 제대로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병원 못지 않은 병원으로 키워 볼 생각이었다.
실제로 지난 2월에 개원한 병원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병상가동률은 90%를 넘겼고 그 상태라면 1년 내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메르스라는 엄청난 파도에 발목이 잡혔다. 그나마 개원 직후 성장세를 유지해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2~3개월 길어지면 답이 없다.
이번 달은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부 삭감한 월급을 지급했다. 정부는 긴급 지원자금을 푼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직원 월급만이라도 해결해주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이 돕기를 바랄 뿐이다. 전 국민이 그렇겠지만 누구보다 절실하게 메르스가 종결되길 바란다.
그래도 직원 이탈률은 1~2%에 불과하다.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생계를 꾸려야하는 생활인인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버티겠나 생각한다.
일부에선 병원을 아예 폐업하고 이름을 바꿔서 개원하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우리병원 스스로 정부 지침에 따라 메르스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 대처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결격사유가 될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왜 이름을 바꾸겠나.
메르스 정국에서 벗어나면 환자들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평택시민과 동료의사들에게 평택성모병원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우린 환자를 진료한 것 밖에 없지 않은가.
정부에는 따로 할말이 없다. 메르스 피해 병원에 대한 보상을 논의하는 것으로 아는데 혹여라도 추후 지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이 병원에는 전 직원의 생계가 달려있고 평택 시민들의 건강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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