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늦은 A병원, 수술이 늦은 B병원. 환자가 사망에 이르러 유족 측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어떤 병원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을까.
법원은 수술이 늦은 병원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는 답을 내놨다. A병원에 대해서는 전원이 늦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이창형)는 최근 뇌 수술을 했지만 사망에 이른 환자 측 유족이 경기도 용인의 A병원과 수원의 B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뇌 수술이 늦은 B병원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고,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3억6385만원에 달했다.
집 안방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뒤통수(후두부)를 세게 부딪힌 홍 모 씨는 남편과 A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료진은 뇌CT, 뇌MRI 검사를 통해 후두개와 경막상 혈종이 동반된 좌측 후두부 골절, 우측 전두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및 뇌내출혈, 좌측 전두부 소량의 경막하 출혈 또는 경막상 출혈, 뇌간 주위 뇌기저조 소실 소견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경막상 혈종 증세가 진행 중에 있으며 향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상급병원 전원을 권했다.
A병원 의료진은 경기도 인근의 상급병원 3곳 이상에다 연락을 해봤지만 돌아온 답변은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고, 수술이 어려워 전원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전원을 결정한 후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전원이 가능하다는 B병원을 찾아냈다.
홍 씨는 B병원으로 실려왔고, 의료진은 홍 씨와 그의 보호자에게 수술 가능성만 설명한 후 중환자실에 입원토록 했다.
그리고 9시간 45분이 지났다. 홍 씨의 상태는 점점 악화돼 혼수상태에 이르렀고, 그제야 의료진은 대뇌 부종 완화를 위한 양측 두개골 감압술 및 혈종 제거술을 했다.
홍 씨는 수술 중에도 뇌가 점점 밀려 나오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수술 후에도 차도가 없었다. 홍 씨는 뇌사 상태로 있다가 경막상 출혈로 인한 뇌헤르니아를 원인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유족 측은 A병원에 대해서는 "혈종 제거를 위한 응급 개두술을 시행하거나 신속하게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함에도 늦게 전원 조치했다"며 전원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B병원은 신경학적 이상 증상을 나타냈을 때 지체 없이 응급 개두술을 시행해 혈종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소홀히 하다 혼수상태에 빠지고 나서야 수술을 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A병원은 과실이 없지만 B병원은 과실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A병원은 다른 상급병원으로의 전원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알아보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시간이 걸린 것"이라며 "전원을 지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B병원은 적극적으로 응급 수술을 시행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뒤늦게 수술을 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A병원 진료의뢰서를 토대로 당시 홍 씨의 증세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했다"며 "후두개와 경막상 혈종은 집중 관찰보다 신속하게 혈종 제거와 감압을 위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병원 의료진은 혈종 악화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혈종량 증가나 종괴 효과의 발생 등에 집중했다기보다는 뇌부종의 진행 상태, 망인의 의식 저하 여부에 치중해 처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수술 역시 혈종 제거술보다는 뇌부종 완화를 위한 감압술을 우선했던 것으로 미뤄볼 때 홍 씨의 증세를 근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치료를 행한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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