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강의실. 오전 9시부터 8시간 동안 8명의 교수가 한시간씩 열띤 강의를 쏟아내고 돌아가면 학생들은 이를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고군분투한다. 자신의 관심사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틀에 맞춰 무조건 암기해야 하는 게 의과대학 교육과정이라 여기며…
지금까지의 서울의대 강의실 풍경이었다. 하지만 내년 새학기부터 교과과정을 개편,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서울의대 정승용 교육부학장(외과)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정승용 교육부학장
이번 서울의대 교육과정 개편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교수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과거 틀에 박힌 강의자료는 사라지고 학생들이 선택하고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게 핵심.
정승용 교육부학장은 "내년부터는 8시간 내내 강의실을 지키며 수업을 듣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며 "융합적이고 역량중심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육부학장에 따르면 본과 1학년부터 매주 임상에 투입해 임상술기를 익히고 환자 인터뷰 기법을 배우는 등 현장 감각을 익히도록 한다.
현재 한시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것.
오후에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던 강의를 배제하고 토론 및 실습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특히 임상 실습은 본과 1, 2학년 학생들은 테스트북으로 본과 3학년부터는 시뮬레이션으로 임상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임상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본과 3, 4학년 병원 내 실습기간에는 기초의학 수업을 통해 질병의 기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할 계획이다.
정 교육부학장은 "학생 실습기간에는 기초의학 교수가 직접 병원으로 이동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당뇨가 발생하는 기전 등 각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교육해 의학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자칫 임상의사만 양성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앞서 오전에 실시하는 강의는 필수과목으로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이지만 오후 교육과정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연구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기초의학 분야 심층 토론 수업에 참여하면 되고 임상이 좋으면 실습 수업을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서울의대가 말하는 역량중심 융합 교육과정이다. 임상실습은 강화하되 선택교육과정을 확대함으로써 연구 및 임상분야를 깊게 파고들 수 있다.
그는 "최근 의사국시 합격률이 저조해 학부모들이 필수 교육과정을 강화해달라는 요구가 높다"면서 "오전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국시 수준에 맞춘 교육과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면 오후 커리큘럼은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우수한 임상의사는 물론 의학자를 길러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최근 신설된 의과대학이 1년 만에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과 달리 역사와 전통을 고수해온 서울의대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 교육부학장은 교육과정 개편에 반대하는 기초의학과 등 여러 교수진을 설득하기 위해 40번 이상의 설명회를 진행한 결과 끝내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앞으로 갈길이 순탄치 만은 않다.
교육과적 개편을 큰 변화가 예상되는 기초의학 분야 교수들의 반대 이외에도 앞으로는 각 전공과별로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졸중 강의를 진행하는데 신경과 의사가 맡을 것인지 신경외과 의사가 하는 게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초의학 교수들은 수차례 설득을 거쳐 공감대를 이뤘지만 과목별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예상된다"면서 "이는 병원에 맡겨둘 게 아니라 대학에서 주도권을 잡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의학 교수가 사라지는 것도 위축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강의에만 집중했던 역량을 연구 등 다방면으로 확대해나가는 변화는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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