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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에게 가장 친숙한 도구, 바늘 그리고 도관

박성우
발행날짜: 2016-01-05 12:09:21

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15]

바늘과 도관

인턴에게 가장 친숙한 도구는 바늘(Needle)과 도관(Catheter)이다. 주로 채혈할 때 쓰는 바늘과 몸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거치하고 유지하는 데 쓰는 도관이다.

처음 채혈이 익숙하지 않을 때에는 작은 바늘을 사용한다. 바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경이 큰 혈관에 찌를 경우 실패할 확률이 적어서인지, 큰 바늘보다는 그나마 덜 아플 것 같다는 미신 때문인지 작은 바늘을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채혈 검사가 여러 항목 시행되어야 할 경우 필요한 검체 혈액양이 늘어나는데 그때는 큰 주사기를 써야 한다. 물론 큰 주사기에는 큰 바늘이 달려 있다.

최근에는 주사기를 이용하지 않고 진공기(Vacutainer)라 하여 대량 채혈을 할 때 채혈 용기에 바로 담을 수 있는 기구들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채혈하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주사기를 이용하는 게 제일 좋다.

이제는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일을 보다 빨리 하기 위해서인지 바늘이 제법 큰 주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말마따나 주사기를 자꾸 써야 채혈하는 실력이 좋아진다 했는데 겁내지 않고 주사기를 쓸수록 채혈 술기가 더 향상되는 느낌을 받았다.

비단 채혈 검사에만 바늘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소화기내과로 옮겨온 이후로는 복수 배액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다. 간경화로 간이 딱딱하게 굳게 되면 이로 인해 식도정맥류나 복수 등 동반되는 징후들이 나타난다.

식도정맥류 같은 경우 내시경을 이용해 혈관을 묶거나 경화제를 이용해서 굳히면서 출혈 위험을 낮춘다. 복수의 경우 아직 그 효용에 대해 의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치료 목적으로도 복수를 배액하는 경우가 있다.

간경화 환자의 배에 복수가 차서 빵빵하면 거동하는 데도 불편하고 심할 경우 숨쉬기도 힘들다. 복수 배액은 알려진 술기에 따라 복벽을 거대한 바늘로 찔러 복강 안, 뱃속의 물을 빼내는 것이다. 혹은 수액 치료나 약물 치료를 위해 중심 정맥관Central line이 필요할 때 도관을 이용한다. 도관은 대개 채혈용 주사기에 비해 직경이 두껍다.

인턴이 되고 나서 채혈 검사가 나오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환자의 나이다. 고령일수록 투병생활을 오래 해온 환자일 가능성이 높고 그런 경우 성한 혈관이 별로 없다. 또 피부와 혈관 모두 탄력을 잃어서인지 채혈이 쉽지 않다.

나이를 확인하고 병실에 들어가면서 두 번째로 환자와 보호자의 인상을 확인한다. 채혈 검사용 쟁반을 들고 들어갈 때부터 인상이 굳어지고는 의사를 노려보는 환자가 있다. 조심해야 하는 만큼 채혈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땀도 뻘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예민한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는 경우 한두 번에 채혈이 되지 않으면 된통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편안해 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환자들은 들어갈 때부터 마음이 놓인다. 한두번의 실패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오히려 자기 혈관이 안 좋다고 본인 탓을 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채혈 술기가 경지에 이르면 들어가자마자 환자의 팔부터 본다. 팔을 보고 혈관이 좋은지부터 확인하고 채혈을 시작한다. 시간은 단축되지만 그만큼 환자의 얼굴은 안 보고 팔만 보고 채혈하는 순간이 온다 하니 웃을 일만은 아니다.

지하철을 탈 때도 사람 팔과 혈관을 보니 이것도 직업병인가 보다. 의식적으로 채혈할 때마다 환자들과 눈을 한 번 더 마주치고 이야기를 건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놓고 채혈에 실패하면 인턴 동기 말마따나 진상이지만!

최근에는 도관을 넣는 어려운 시술들에 초음파를 이용한다. 조영제를 주입하는 검사나 정맥 투약 혹은 중심정맥용 영양이라 해서 직접 혈관으로 영양소를 투입하는 목적으로도 많이 쓰인다. 소화기내과 병동에서는 복수를 지속적으로 배액하기 위한 '돼지꼬리모양도관(Pig-tail Catheter)'이나 쓸개와 췌장 쪽으로 나 있는 도관들 'PTBD' 혹은 'PTGBD'를 지닌 환자들도 자주 보게 된다.

간경화는 한 번 경화가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다. 증상 호전을 위한 치료를 병행하면서 최후의 수단인 간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병이 너무 진행돼 오늘 내일 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마지막 간이식까지 가는 길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하직하는 환자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의 불꽃을 피웠던 환자들이 가족 곁을 떠날 때, 인턴은 바늘과 도관을 빼는 일을 한다. 피할 수 없었던 여러 침습적인 시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환자의 몸에는 도관들이 곳곳에 꽂혀 있다. 장례를 치루기 전 망자의 몸에서 도관들을 깨끗하게 빼고 정리하는 일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다.

치료실 바깥에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이 있다. 곁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있었던 각종 치료도구들이 하나 둘 치워진다. 그 뒤에는 인턴이 남는다. 간호사들이 도와줄 때도 있으나 사망한 환자와 인턴만이 치료실 안에 있을 때가 더러 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환자의 육체에 미세하게 남은 온기를 느끼면 생명의 덧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망 이후 눈을 감겨도 계속 눈을 떠서 "아직도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 미련이 남았나 봐"라는 보호자 아들의 말. "선생님 깨끗하게 잘 부탁드릴게요" 하고 눈물을 참는 보호자 부인의 부탁.

간혹 도관이 너무 커서 뺀 자리에 구멍이 눈에 띄는 경우에는 봉합을 하고 위에는 드레싱을 더해 정리한다. 도관 정리 이후에는 간호사들이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환자를 다시금 편안하게 눕힌다. 장례를 위한 절차를 기다리는 사이 가족들은 하얀 시트를 덮고 있는 환자의 얼굴을 맞이한다.

종합병원은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중환자들이 많다. 그래서 바늘로 찌르고 도관을 거치해야 하는 일도 많다. 환자의 몸에서 도관을 빼는 일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이루어진다. 선배들은 일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위기가 온다고 했다.

그 위기는 내가 대하는 환자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보이기보다 빨리 처리해야 할 일로 보이는 순간 찾아온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죽음을 피하지 못한 환자의 몸을 보다 깨끗이 정리했다.

<16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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