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법안, 일명 예강이법(신해철법)의 골자다. 의료분쟁 조정 남용 우려가 있어 자동개시 대상을 제한한 것이다.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본회의 통과만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지만 '중상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가 법안에 들어가면서 환자단체, 의료계 어느 곳도 반기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복지부는 전체회의에서 중상해의 예시로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등급 이상 등을 제시했다.
복지부의 예시만 놓고 본다면 환자단체도 법 통과를 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복지부가 예로 든 중상해는 사망에 준하는 수준"이라며 "사망은 자동 조정을 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원에서 하면 된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있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조건 붙는 자동 개시는 절대 반대했었다"며 "자동 개시 대상 범위가 너무 좁으면 다시 반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환자단체연합은 형법상 중상해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대검찰청이 따로 마련해 놓고 있는 중상해 기준을 보면 ▲뇌 또는 생명 유지 위험이 있는 주요 장기의 중대한 손상 ▲신체 중요 부위 상실이나 변형, 시각·청각·언어·생식 기능 등 신체 중요 기능의 영구적 상실 ▲중증의 정신장애, 하반신 마비 등 완치 가능성이 없는 질병 등이다.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도 복지부의 예시를 놓고 중상해 범위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등급은 3급 이상이 중증이라고 보든 사람도 있는데다 중상해가 주관적인 부분이 많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중증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없는 상황이라서 합의를 통해 하나씩 확대해 나가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분만, 중환자 진료 기피 현상 생길 수도"
의료계는 자동개시법 자체를 반대해오던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중상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제한적이더라도 타 질환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법안이 만들어지면 분만, 중환자 진료 기피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좌훈정 전 감사는 "중상해 표현이 굉장히 모호하다. 의학적 중상해, 소송에서의 중상해, 장애등급 등에서 의미가 전부 다르다"며 "사망은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을 일으킬 수 있지만 중상해는 심도 있게 논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지부 예시는 예시일 뿐"이라며 "시행령에서 얼마든지 범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의료계에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부회장도 "의료계에 중상해에 대한 정의 자체가 없다"며 "자동 개시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정 전치주의를 추진하고, 중재를 한다면 소송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료분쟁 조정 자동 개시 자체가 안된다"고 못 박았다.
이어 "통과를 막을 수 없다면 중상해 범위를 최대한 사망에 준하는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안 자체가 헌법의 영장주의, 포괄위임 입법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좌 전 감사는 "법을 만들 때 세부사항을 시행령에 위임할 수 있는데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게 포괄위임 입법금지 원칙"이라며 "중상해 범위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하자며 통째로 넘겼다.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넘겨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평의사회 이동욱 대표는 "자동 조정이 되면 의료분쟁중재원은 영장이 없어도 의료기관의 문서, 물건 등에 대해 강제 압수 조사할 수 있게 된다"며 "의사가 이를 거부하면 과태료도 아닌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중환자만 생기면 법원 영장도 없이 압수 조사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누가 분만을 하고 중환자를 치료하려 하겠나"라고 반문하며 "의료분쟁 자동개시법이 아니라 의료사고 특별수사법, 의료분쟁 조장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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