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재활원에는 휠체어를 타고 회진을 도는 의사가 있다. 이범석 부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이 그 주인공.
"어느 날 회진 중 만난 20대의 하지 마비 환자가 왜 척수 환자들은 선생님을 올려다봐야 하죠라는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때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이지만 직접 휠체어를 타고 환자를 만나보자고 생각을 했죠."
휠체어를 타고 회진을 돌 때면 잠시나마 환자와 그들의 보호자가 환하게 웃는다. 복도를 오고 가는 직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다.
이범석 부장은 환자를 통해 스스로도 변화를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던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의 변화도 갖고 온다.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소통'이었다.
그는 우선 처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에게 꼭 의료와 상관없는 말을 건다. 비의료적 대화를 한마디라도 하고 말겠다는 다짐까지 한단다.
"제일 이야기하기 쉬운 소재가 집의 위치나 고향을 묻는 것입니다. 고향이 청주라고 하면 청주의 무심천은 아직 잘 흐르냐고 되묻는 식입니다. 그러면 환자가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환자와 신뢰를 쌓아 나가는 거죠."
이범석 부장은 10박 11일로 북유럽 여행을 다녀온 중년의 환자이야기를 꺼내며 '환자가 하는 말을 차트에 적어놓는 습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통증 치료를 받던 중년의 아주머니 환자였습니다. 북유럽 여행을 가니 특별히 잘 좀 치료해 달라고 하더군요. 차트에 북유럽 여행을 간다고 적어놨습니다. 한 달 뒤, 환자가 다시 외래를 찾았을 때 즉시 북유럽 여행이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환자 얼굴만 보고서는 초진인지 재진인지도 모를 수 있지만 차트 내용 때문에 환자와 소통할 수 있었죠."
그는 재활의학과 의사가 환자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면서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풀리지 않는 고민도 털어놨다.
축구부 주장이었던 중학교 3학년 이 모 군은 불의의 사고로 목 이하 사지마비 환자가 됐다. 이 군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지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턱으로 조종하는 전동휠체어와 이마에 붙이는 스티커가 나왔고, 이범석 부장은 이를 이 군에게 권했다.
그렇게 약 4년이 흘렀다. 이 군은 전동휠체어를 직접 운전하며 대학입학수학능력 시험까지 봤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이 군은 1년에 한 번씩 이범석 부장 집에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지난해는 글램핑도 함께 다녀왔다. 그들의 소중한 인연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중증 사지마비 학생도 첨단 보조 기기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게 재활의학과 의사입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재활의학과 의사로 은퇴할 때 내 눈앞에 떠오르는 한 사람의 장애인이 있을까가 지금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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