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유통·사용에 이르는 의료기기 전주기적 추적관리를 실현하는 ‘의료기기 UDI’(Unique Device Identification·고유식별코드) 시스템.
한국보다 앞서 의료기기 UDI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은 FDA가 2014년 9월 24일 3등급 의료기기에 이어 2015년 9월 24일 2등급 이식형·생명보조 및 유지기기에 대한 UDI 의무화를 시행했다.
또 올해 9월 24일부터 2등급 의료기기·3등급 재사용기기까지 확대 적용하고 2018년 9월 24일부터 2등급 재사용기기와 1등급 의료기기까지 전면 의무화를 완료할 계획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료기기 부작용 보고·리콜 등 환자 안전관리를 위해 의료기기 UDI를 도입한 미국은 당초 목적을 실현하고 있을까?
UDI 도입 전·후 미국 FDA 리콜 명령부터 회수 및 폐기까지 총 소요기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국 인디애나대학 헬스케어 유통공급 분야 석학 칼 브릭스(Carl M. Briggs) 교수는 2019년 의료기기 UDI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정부기관·병원·의료기기업체에 그 답을 제시했다.
칼 브릭스 교수는 본지가 지난 13일 개최한 ‘국민안전을 위한 효율적인 의료기기 추적관리와 유통선진화 포럼’에서 미국의 의료기기 UDI 도입 배경과 경험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주제발표에서 “의료기기 UDI는 의료기기 식별·추적관리시스템으로 글로벌 확대 적용되고 있다”며 “당초 미국의 UDI 도입은 환자 안전을 위한 의료기기 ‘리콜’(recall)에 초점이 맞춰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FDA는 2013년부터 UDI를 본격 의무화하고 2021년까지 지속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며 “UDI 도입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칼 브릭스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UDI 도입은 생산·유통·최종 사용에 이르는 의료기기 이력·추적관리를 통한 환자 안전관리 필요성에서 이뤄졌다.
의료기기 UDI 시스템을 EHR(Electronic Health Record·전자건강기록) 또는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함으로써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료기기 부작용 보고와 리콜 등 환자 안전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 같은 목적은 유의미한 성과로 실현됐다.
칼 브릭스 교수는 “UDI 도입 후 FDA가 의료기기 리콜로 분류하는 소요기간이 기존 27일에서 9일로 크게 단축됐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기기 UDI를 시행하지 않았던 2013년 이전에는 의료기기기업의 50%만이 FDA 리콜 일정을 따를 수 있었다”며 “하지만 UDI 도입 이후 의료기기 추적관리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90%에 달하는 기업들이 리콜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작용이 보고된 의료기기 리콜 명령부터 회수를 거쳐 시장에서 완전 폐기까지 소요되는 전체 기간 또한 크게 단축됐다.
그는 “UDI 도입 전 FDA 리콜 발표부터 종료까지 소요기간이 평균 597일이었던 반면 도입 후에는 30일 미만으로 크게 줄어들었다”며 “이는 해당 의료기기 부작용에 노출돼있는 환자들의 위험도를 그만큼 줄임으로써 환자 안전을 높이고자했던 UDI 도입 목적을 실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칼 브릭스 교수는 환자 안전관리가 의료기기 UDI 시스템 도입을 통한 성과물 중 하나에 불과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단언했다.
의료기기 UDI 도입이 환자 안전관리는 물론 유통구조 선진화로 비용절감을 통한 지속가능한 헬스케어 혁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부연이다.
그는 “의료기기 UDI의 가치 중 환자 안전관리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초기 제품 등록부터 병원 사용 전까지 강력한 추적관리로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제품을 사전에 걸러냄으로써 의료진이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적합한 의료기기를 신속히 선택할 수 있어 임상에서의 환자치료 프로세스 효율성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통과정에서의 투명성과 병원 재고관리 효율성을 높이는 유통구조 선진화는 국가적으로도 헬스케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환자 치료개선에 필요한 의료서비스 증대로 이어져 그 혜택이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기 UDI 도입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 시급”
칼 브릭스 교수는 미국의 의료기기 UDI 시스템 구축사례를 토대로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국 정부기관·병원·의료기기업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국 내 의료기기 UDI 관련 법안은 2006년 만들어졌고 이듬해 법안이 통과됐다”며 “이 법안은 2018년까지의 장기 로드맵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른 결정이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칼 브릭스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빠른 결정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가능했다.
정부 주도로 의료기기 UDI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산업계를 대표하는 의료기기협회가 선제적으로 나서 2006년 FDA에 필요성을 제기한 공식 서한을 보냈다는 것.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한 몸처럼 움직이는 병원과 보험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 도입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는 미국과의 환경적 차이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이 의료기기 UDI 시스템 도입의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하루빨리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제도 도입을 위한 의사결정을 무작정 서둘러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길을 갈지 명확한 방향성과 로드맵 설정을 서둘러야한다”고 강조한 칼 브릭스 교수.
그는 “의료기기 UDI 도입 법안이 통과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부기관·병원·의료기기업체 등 이해당사자가 결집해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 방안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도입에 앞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운영위원회를 설립해 포괄적인 점검 목록과 단계별 구체적인 로드맵 수립을 한국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의료기기 UDI는 ‘규제’가 아닌 ‘파트너십’ 관점에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포괄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지고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완전한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 브릭스 교수는 특히 “한국은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할 만큼 발전된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가”라며 “오바마케어(건강개혁법)를 추진 중인 미국 역시 한국의 선진화된 의료산업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국제조화에 발맞춰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해 전 세계 의료기기 UDI 도입 확대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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