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 소재 한 영상의학과의원은 이 질문에 답을 얻고자 공정거래위원위에 2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의원은 2015년 7월 22일과 9월 9일 공정위에 당시 한국지멘스헬스케어(현 지멘스 헬시니어스)를 불공정행위 혐의로 신고했다.
내용은 지멘스가 CT·MRI를 판매하면서 일부 중소병의원에 소프트웨어 사용권만 제공하고 소유권을 주지 않는 등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취지를 위반했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CT·MRI 유지·보수에 필요한 프로그램 이상여부를 점검하고 오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패스워드에 해당하는 '서비스키'를 지멘스가 매매계약서상 소프트웨어 소유권을 주장하며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지멘스 CT·MRI를 구매한 병의원은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제3의 AS업체로부터 유지보수를 받지 못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멘스 불공정거래 혐의가 더욱 논란이 됐던 이유는 일부 병의원과 체결한 매매계약서상 장비 소프트웨어 관련 조항 때문.
당시 기자가 입수한 다수의 매매계약서 제5조(소프트웨어)를 살펴보면 "을(지멘스)이 갑(병의원)에게 제공한 소프트웨어의 모든 권리는 SIEMENS사에 있으나 갑은 규정된 목적에 한해 무기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 "소프트웨어 및 그에 관련된 서류는 일부 혹은 전부를 추출해 갑의 장비운전자 이외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갑 혹은 을이 지정한 제3자가 을을 대신해 공급 장비의 보수 및 정비 작업을 시행할 경우 보수 작업용 소프트웨어에 관하여 사전에 을과 유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야한다"고 명시했다.
신고인은 이 같은 소프트웨어 소유권 주장이 불공정한 독소조항이라고 판단했다.
이유로는 GE헬스케어·도시바 등 타 업체들은 국내시장에서 의료장비에 대한 기본적인 서비스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매매계약서상 소프트웨어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소프트웨어 소유권 조항이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중소병의원 매매계약서에만 존재한다는 이유 또한 근거로 제시했다.
대학병원의 경우 자체 표준계약서를 갖고 있으며 구매 또는 법무팀이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기 때문에 장비 소프트웨어 권리를 지멘스가 소유한다는 등 문제가 되거나 클레임이 걸릴 만한 조항도 없을뿐더러 그런 계약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원장 혼자 장비 도입을 결정하는 일부 중소병의원에는 지멘스에 유리한 불공정한 독소조항이 담긴 매매계약서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주장이다.
지멘스가 해외의 경우 무상으로 장비 서비스키를 제공하지만 한국에서는 암호를 설정해 지멘스 또는 특정 대리점만 소프트웨어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는 의혹도 더해졌다.
2015년 지멘스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한 전 AS업체 대표는 "미국에 있는 지멘스 장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문의한 결과 미국에서는 지멘스 CT·MRI 서비스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키를 아무런 문제없이 레벨4까지 무상 제공한다"고 밝혔다.
또 지멘스를 신고한 영상의학과의원 관계자가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터키 공정위는 자국시장에 진출한 지멘스 GE헬스케어 필립스 도시바 히타치 등 주요 다국적기업들이 무상으로 서비스키를 제공토록 했다.
더불어 장비 관련 기술용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비밀번호와 접속을 위해 필요한 동글(Dongle) 및 유사한 장치를 합리적 시간 내 제공하는 것이 경쟁구도 구축을 위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FDA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서비스키를 제공하라는 명시적인 자료는 없지만 설치 및 수리하는 업체는 제조사가 제공한 지시서와 과정표에 의해서 장비를 설치해야 하고, 제조사는 적절한 설치를 위해 가이드라인과 과정표를 배포해 장비를 설치하는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신고인은 이를 근거로 "지멘스가 국내 기술서비스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서비스키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멘스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엔지니어들이 기술서비스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는 걸 방해하고 소규모 기술서비스업체 시장진입을 어렵게 함으로써 장비를 구매한 소비자는 전적으로 지멘스에 의존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영상의학과의원이 지멘스를 신고한 후 약 2개월 뒤 2015년 11월 3일 공정위는 한국지멘스헬스케어의 불공정행위 혐의 조사에 착수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지 어느덧 약 2년이 지났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지멘스 불공정행위 혐의에 대한 공정위 조사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까?
공정위 지멘스 과징금, 12월 위원회 심의서 결정?
기자는 최근 복수의 제보자들로부터 공정위 조사 관련 내용을 전해 들었다.
이들은 지멘스를 공정위에 신고한 당사자와 지멘스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전 AS업체 대표, 전직 지멘스 직원들 등이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지멘스 불공정행위 혐의 조사 결과는 오는 12월 중 공정위 위원회 심의에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정위 위원회 심의 과정은 피심인과 심사관이 심판정에 출석해 대심구조 하에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고 심사관 심사보고 후 피심인 또는 대리인이 그에 대한 의견을 진술한다.
이어 심사관은 행위사실, 위법성 판단 및 법령 적용 등을 요약 보고하면 피심인 또는 대리인이 심사관 심사보고 내용에 대해 의견을 진술한다.
이후 주심위원부터 차례대로 사실관계 및 위법성 판단에 필요한 내용을 심사관과 피심인에게 질문하고 위원들의 질문이 종료되면 심사관은 시정명령, 과징금 납부명령 등 조치의견을 발표한다.
이에 피심인은 심사관 조치의견에 대한 입장을 진술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지멘스 신고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멘스 전직 직원에 따르면 최근 지멘스 헬시니어스 한 임원이 서비스사업부문(SVCS) 직원들에게 공정위가 과징금 80억원 처분을 내릴 것이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삭감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내용을 전해들은 신고인은 공정위 사건 담당 심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과징금 결정이 났는지 문의했다.
이에 심사관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날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12월 중 위원회 심의가 열릴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이 심사관은 신고인에게 심의 참석 여부도 물었다.
신고인 제보대로라면 공정위는 12월 중 위원회 심의를 통해 지멘스 불공정행위 혐의에 대한 조치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멘스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전 AS업체 대표가 기자에게 밝힌 내용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대표는 "약 4개월 전 공정위를 방문해 지멘스 불공정행위 혐의 관련 내용을 진술했고, 2개월 전 공정위 심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또 "공정위 심사관이 조만간 지멘스 관련 위원회 심의를 하는데 입회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봐서 참석하겠다고 답했다"며 "(심사관으로부터) 정확한 위원회 심의 날짜는 통보받지 못했지만 올해 안에 결론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멘스 측은 과연 이 같은 공정위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까?
전직 지멘스 직원 제보에 따르면, 내부적으로는 공정위 조치의견 발표가 임박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 직원은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내부적으로는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세부적인 내용만 직원들에게 안 알려줬을 뿐이지 그렇다고 쉬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과징금 금액은 모르겠지만 수십억 두 자리 수 과징금이 나올 것이라는 것과 올해 안에 공정위 결정이 날 것이란 말은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멘스 불공정행위 혐의 내용을 기술한 약 300~400페이지에 달하는 리포트에 대해 회사 내부적으로 불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직 직원은 "이 리포트가 지멘스 법률대리인(화우·김앤장)이 공정위를 통해 입수한 것인지, 아니면 공정위가 지멘스에 제공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내부적으로는 리포트가 지멘스 진술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앞뒤가 안 맞는 내용으로 굉장히 급하게 만들어졌다는 불만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공정위가 현 정부의 대기업 갑질이나 횡포 근절과 발맞춰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과도하게 과징금을 때렸다는 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멘스 헬시니어스 언론홍보 담당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정위로부터 위원회 심의 등내용을 전달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공정위 통보를 받은 건 없다. 계속적으로 공정위 측에서 추가 요청하는 자료에 회신하고 있다"며 "(과징금 수준이 결정되고 심의 날짜가 잡히는 등) 그 정도 단계에 있는 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정위에서도 조사가 마무리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지멘스 임원이 서비스사업부문 직원들에게 공정위가 과징금 80억원 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삭감하겠다는 말을 했다는 제보 또한 일축했다.
"인센티브는 직원의 인사고과 또는 퍼포먼스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다. 가령 회사가 법적소송에 걸려 추징금이나 변호사 비용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직원들 인센티브를 삭감할 순 없다."
더욱이 공정위 과징금 처분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그는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것은 타 AS업체가 서비스하려고 했던 규모가 작은 영세한 병원들의 100만원 단위의 (지멘스)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한 것이었다"며 "이는 (만약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정도를 받을 사안이지 추징금이 나올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시정명령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과징금이란 것은 아예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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