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및 한약제제의 안전성 유효성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정부의 고시가 위법하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헌법재판소가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31일 과학중심의학연구원 강석하 원장 등이 제기한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제24조 제1항 제4호 위헌확인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시다.
해당 조항은 한약서에 수재된 처방에 해당하는 품목은 의약품으로 개발할 때 유효성 및 안전성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처방량, 적응증, 복용법, 제조방법 등이 모호하거나 미기재된 품목인 경우 한약서 중 유사처방을 적용할 수 있는 품목도 포함된다.
여기서 한약서는 동의보감, 방약합편, 향약집성방, 경악전서, 의학입문, 제중신편, 광제비급, 동의수세보원, 본초강목 및 '한약처방의 종류 및 조제방법에 관한 규정(보건복지부 고시)'으로 정한 한약조제지침서를 말한다.
즉, 동의보감에 나와있는 방법으로 약을 만들어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건너뛸 수 있다는 것.
강석하 원장을 비롯한 헌법소원 청구인은 "전통적 경험이 안전성, 유효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양인은 이미 1800년대에 깨닫고 현대의학을 발전시켰다"며 "안전성, 유효성 심사 면제는 합리적, 과학적으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고 적어도 단순히 고전 한약서에 나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면제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약 등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임상시험도 없고 부작용 집계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각종 한약이 어떤 부작용을 얼마나 일으키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헌재는 "헌법 상 한의사 등이 조제한 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토 방법과 절차를 규정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할 명시적인 입법 위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헌법 해석상으로도 그런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심판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성, 유효성이 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한약제제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제로 한정하고 있다"며 "한약서에 수재된 품목이라도 안전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면 심사 대상에 다시 포함시키는 등의 규제 방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해당 조항이 국민의 보건권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헌재 판결을 받아든 강석하 원장은 "한약의 안전성, 유효성 평가 제외 문제를 헌법재판소에 관여할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발암물질인 아리스톨픽산이 들어가 있던 한약재가 심각한 문제가 돼 허가가 취소된 적이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걸러내지 못한 것인데 현재 제도가 안전성을 담보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우려감을 드러냈다.
또 "최근 성조숙증 한약이라며 동물실험 논문을 갖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는 한의원이 있었다"며 "해당 연구는 실험대상이었던 쥐가 다 크기 전에 해부를 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쥐가 될지 어떨지 확인을 못해본 것이다. 그런 결과를 내세우며 아이들에게 한약을 먹인다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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