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의료기기 규제혁신·산업육성을 정책 기조로 발표했고 복지부 식약처 심평원 등 각 부처는 세부 실행안 마련을 위해 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했다.
일부 감염 체외진단의료기기의 ‘선(시장)진입·후평가’ 우선 시행과 신의료기술평가 별도 트랙 추진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로 예상되는 의료기기산업육성법 통과에 따른 혁신의료기기 인증제 도입과 각종 지원책은 업계에 큰 도움이 될 전망된다.
메디칼타임즈는 2019년 기해년을 맞아 의료기기업계를 대변하는 양대 산맥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대한 평가와 관련 현안 및 올해 추진사업을 들어보았다.
첫 번째로 국내 의료기기제조사를 대변하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재화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Q: 지난해 7월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위한 의료기기 규제혁신 추진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일부 감염 관련 체외진단의료기기 선진입·후평가 우선 시행과 신의료기술평가 별도 트랙 추진을 앞두고 있다. 특히 혁신의료기기 인증제 도입과 각종 지원책은 국내 제조사들에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부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이 의료기기산업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다만 의료기기 규제혁신 소관부처들이 진정 국산 의료기기 육성에 관심이 있는지, 또 이해관계는 없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 의료기기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산업 정책을 유도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다국적기업은 지속적으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있는 반면 국내 중소기업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와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정부 관계자들도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국내 토종기업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벌이고, 나아가 정작 국내사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이 (규제혁신을 통한) 의료기기산업 육성을 외치는 이유는 결국 시장을 키워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겠다는 속뜻이 아니겠는가.
시장이 커지면 국내기업에 좋은 일이지만 커지는 시장을 미리 선점할 수 있는 것은 다국적기업이기 때문에 그 혜택이 국내사보다 다국적기업에 더 크게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례로 의료기기산업육성법의 혁신의료기기 인증 내용을 살펴보면, WTO 가입국가인 한국의 여건상 국내사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도 선정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금도 국내사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국적기업과 불리한 경기를 하고 있다. 혁신의료기기 인증이 오히려 다국적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Q: 조합은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혁신과 혁신의료기기지원법 등이 국내사보다는 오히려 다국적기업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국내사들이 원하는 실질적인 규제완화와 제도개선은 무엇인가
-국내 제조사를 위한다면 신의료기술평가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의료기술평가는 당초 의사들의 무분별한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 생긴 제도다.
의료기기는 의료행위에 포함되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불과한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돼 의료기기업체들의 연구개발을 저해하는 괴물이 돼버렸다.
식약처가 의료기기 안전성·유효성을 충분히 심사해 인허가를 내준 제품에 대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안전성·유효성을 재평가하는 것은 ‘이중규제’에 해당된다.
국내사 입장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또 이로 인해 시장진입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인공지능(AI)·로봇기술을 이용한 첨단·혁신의료기기를 연구개발 또는 생산하는 스타트업이나 국내사들이 한국시장을 떠나고 있다.
이는 결국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은 이중규제인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앞서 ‘문재인케어’를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포괄수가제 시행·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문재인케어는 (치료재료 가격인하 등) 의료기기업체들의 최소한의 이익을 더욱 더 옥죄는 정책으로 결국 진료의 질 저하를 초래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Q: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등 국내 제조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조사들이 직면해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제도적 지원은 무엇이 필요한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은 제품 특성상 제조생산을 자동화할 수 없는 국내사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타 산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제품가격을 올려 어느 정도 원가보전이 가능한 반면 의료기기(치료재료)는 보험수가에 묶여 있기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따라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증가분을 보험수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즉, 원가조사에 따른 치료재료 상한금액을 인하한 것과 같이 원가상승 시 이에 따른 적정 상한금액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합은 이를 위해 기준 환율에 따라 치료재료 상한금액을 조정하는 환율연동제와 같은 ‘제조생산원가 연동제’(가칭)를 복지부에 건의한 상태다.
제조생산원가 연동제는 인건비 및 물가상승 등 제조생산원가 증가분에 대한 일정 비율을 보험수가에 적용해 제품에 대한 가격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Q: 수입 제품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제조생산원가 연동제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수입 제품은 환율과 통관비용까지 합한 FOB를 적용해 원가 이상의 수가를 적용한다. 반면 국산 의료기기는 원가 또는 원가 이하 수가를 받는 경우가 많아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환율연동제 내용이 국민건강보험법에 있는 만큼 제조생산원가 연동제 또한 관련 조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해 복지부하고는 이미 1차 회의를 가졌다. 아직까지 명확한 답변은 받지 못했다.
Q: 식약처가 지난해 5월 입법예고한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에 따라 의료기기 UDI 공급내역을 통해 ‘공급금액·공급단가’를 보고토록 한 것에 대해 조합을 비롯한 의료기기단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조합이 공급단가 보고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고시가 되지 않은 사안이다. 정부가 의료기기 UDI(Unique Device Identification·고유식별코드) 제도를 통해 유통과정을 투명화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필요성에는 동의한다.
다만 공급단가 보고가 의료기기(치료재료) 가격 인하를 위한 또 다른 기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제품 가격이 구매 수량·결제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혹여나 특정 사례를 가격결정 기준점으로 삼지 않을까하는 우려다.
정부가 이미 모든 의료기기의 가격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판매 촉진을 위해 도매에 넘기는 가격까지도 확인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정책이라는 게 업계 판단이다.
특히 가격을 단계별로 통제하는 것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가 클 뿐만 아니라 위헌소지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조합을 비롯한 의료기기단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Q: 조합은 지난해 회원사들의 의료기기 인허가·보험등재·정책 관련 애로사항을 해결하고자 회원지원팀(SOS팀)을 신설한 것은 물론 보험위원회 부위원장을 선출해 의료기기 제도·보험 관련 정책 기능을 강화하는데 노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합의 대정부 제도개선 제안 등 정책 기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다국적기업을 회원사로 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비교해 국내 중소제조사들로 구성된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의 정책 기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합은 지난해 정책개발팀을 보강하고 회원지원팀을 신설하는 한편 제도개선위원회·보험위원회 등 활발한 위원회 활동을 펼치며 정책 기능 강화에 힘썼다.
이런 활동들은 홍보가 급한 것이 아니라 회원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성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외부에 적극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합의 정책 기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합은 중소기업중앙회 헬스케어산업위원회를 통해 의료기기 관련 대정부 제도개선안을 가장 많이 건의했다.
해당 건의안들은 각 부처에 전달돼 이미 정책에 반영됐거나 현재 제도개선이 진행 중이다.
조합은 뿐만 아니라 국무조정실과의 간담회를 통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 등 국내 제조사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 활동을 펼쳤다.
회원사들을 위해 실무적으로 더 많이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고, 결국 그것이 조합의 정책 기능에 대한 실질적인 홍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Q: 조합은 오랜 시간 각종 국제의료기기전시회 ‘한국관’ 구성을 통해 국내 제조사들의 해외시장 개척에 독보적인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의 국제의료기기전시회 참여가 늘면서 조합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국제의료기기전시회(CMEF 2018)의 경우 춘·추계 모두 불과 16~17개 제조사가 조합 한국관에 참여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해외전시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해 CMEF 2018 한국관 참가업체가 적었던 이유는 정부 지원금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높아진 CFDA 인허가 장벽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자율경쟁시대에 지자체들의 국제의료기기전시회 한국관 구성을 뭐라 할 수 있겠나. 다만 해외전시회 현장에서 한국관이 난립하는 상황은 분명 염려스러운 면이 있다.
하나의 콘셉트로 ‘한국’(KOREA)이라는 공통된 브랜드를 내세운 한국관이 모여 있어야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홍보효과와 수출상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바이어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명보다는 ‘KOREA 프리미엄’을 내세울 때 국내 제조사들의 더 큰 수출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조합은 오랜 시간 국제의료기기전시회 참가를 통한 전문성과 바이어들과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지자체들과 협력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조합 스스로도 정부 지원금 확보와 신규바이어 창출을 통해 참가업체에 대한 지원 확대와 최대한 가시적인 수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한국관 운영 방안을 강화해 나가겠다.
거듭 강조하지만 자율경쟁시대에 조합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Q: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의 올해 중점 추진사업은
-국내 제조사들의 목소리가 최대한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
또 공공기관인 국공립병원에서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 장려·데모 시연은 물론 공공판로 및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확대 등 제조사들의 매출증대를 위한 내수시장 확대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더불어 국산 의료기기 수출 다각화와 매출 확대를 위해 부품을 일부 조립해 수출하는 SKD(Semi knockdown) 방식 수출 및 현지화 진출을 지원하고, 해외공공조달 참여 또한 확대해 나가겠다.
이밖에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보조를 맞춰 조합 인도네시아·베트남 해외종합지원센터를 통한 국내 의료기기제조사들의 현지 인허가·시장동향·마케팅 지원을 펼쳐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 증진에도 기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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