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신문 기사를 볼 때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예민한 상황에서 갈등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환자와 의료진에게 모두 큰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병원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행한 환자나 보호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른 환자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법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체 왜, 최근 몇 년 사이 병원 내 폭행 사건이 이처럼 늘어나게 된 것일까?
최근 늘어난 병원 내 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비슷하게 반복되는 어떤 유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개 ‘응급실’에서 술에 많이 마신 ‘주취자’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진 폭행이다. 주취자에 의한 병원 내 폭력이 늘어난 이유는 바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이라는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11년 처음 시행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길에서 신고 되거나 발견된 주취자들을 병원 응급실에 맡기는 제도이다. 경찰들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때론 신원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해장 치료’를 하라며, 진짜 응급환자를 봐야 할 응급실에 데리고 온다.
본인이 왜 응급실에 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취자는 다음 날 술이 깨고 나면 자신에게 청구된 병원비에 항의하기도 한다. 전북 익산의 한 병원에서는 주취자가 담당 의사를 피가 흐르도록 때리고 밟는 ‘범행 현장’에서, 코 앞의 ‘주취자 현행범’을 제압도 않고 그냥 서 있는 경찰의 모습이 CCTV에 공개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일각에서는 응급실에 경찰이 한 명 배치된다는 이유로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더 늘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슬쩍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분명 재검토되어야 하는 실패한 정책이다. 경찰에서 담당하던 주취자 보호 업무를 일부 공공 병원 응급실에 떠넘기면서, 정작 병원들은 정말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제대로 맡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질병이 아닌 것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사회의학 용어로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하는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의료 서비스가 본래 가치에 맞게 쓰이지 못하고 행정적인 요구에 의해 남용되는, 이른바 ‘행정에 의한 의료화’의 대표적 경우다.
‘행정에 의한 의료화’에는 또 다른 케이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경우는 입원이 환자의 치료에 필요할 때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얘기다. 안정을 취해야 하거나, 꾸준하고 반복적인 치료 혹은 밀접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는 정신질환자의 입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부 정신질환자에게는 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인식, 즉 ‘병식’이 없어서 강제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이 경우 병원은 환자를 대신에 가족이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고도의 전문적이고 의학적인 판단 하에 환자의 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찰관의 요청’에 의해 정신 질환자를 입원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행정입원’이라는 제도인데, 이전 법안에서 지자체장이 의뢰하던 것을 지금은 경찰관도 입원을 자의적으로 검토하고 병원에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법조문에서 ‘요청’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도, 지자체나 경찰의 ‘입원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일선 병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응급입원’의 경우에는 의사의 동의 없이 경찰관 단독으로도 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환자 본인도 보호자도 아닌 ‘경찰관’ 한 사람의 요구에 의해 ‘타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사람’을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 수용한다는 발상은 병원의 본래 역할을 물론, 환자의 건강과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문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엄중히 지적한 바 있다.
정신질환의 입원 목적은 질환의 관리와 치료가 되어야지,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강제 수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입원 기준은 환자와 보호자 스스로가 느끼는 필요성과 더불어, 외부의 개입에 간섭받지 않는 의료인의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이 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이 조현병 환자의 강력 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에 대한 국민 여론이 갈대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반하는 강제 입원에 대해 의료계를 비판하던 여론은 이제 범죄자가 된 환자의 관리 책임을 병원에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둘 다 정답이 아니다. 병원은 질환 관리와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을 결정할 뿐, 징역 개념의 사회적 격리를 책임으로 하지 않는다. 정신질환은 강력 범죄가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며,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특히 이슈가 된 조현병은 약 100명 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환자마다 임상 양상과 예후도 다양하다. 다수의 조현병 환자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관리된다고 하며, 조현병 환자에서 일반 인구에 비해 범죄자의 비율이 높지도 않다. 즉, 모든 조현병 환자가 잠재적 범죄자인 것이 아니라, 언론이 주목한 일부 범죄자가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 이다.
범죄자는 조현병 환자이든 고혈압 환자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무원이든 학생이든, 법이 정한 대로 처벌하고 격리시키면 된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일은 교도소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원은 교도소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의 모 국회위원은 본인 지역구에 정신병원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일개 의사가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신병원을 혐오시설로 보는 시각은, 정신질환자를 병원에서 범죄자처럼 관리하길 바라는 ‘행정에 의한 의료화’와 맞닿아 있다. 결국 그들에게 정신질환자는 범죄자이거나 혐오대상이다. 몇 번의 선거와 몇 번의 개혁이 더 걸리더라도, 우리 사회가 기필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병폐임에 틀림없다.
정신질환자의 행정입원과 같은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많은 문제점을 지닌다. 의료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며, 대상 환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야기한다. 행정 편의주의에 의한 인권 침해를 막고 의료가 본래 역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에 의한 의료화’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폐지와 더불어 정신건강복지법의 재개정을 위해, 병원의 역할과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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