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자담배와 관련된 기사를 썼다가 호되게 당했다. 기사를 내려달라는 끈질긴 요청 때문이다.
저간 사정은 알만하다. 전자담배가 일부분 일반담배만큼 해로울 수 있다는 학술적 내용을 다뤘을 뿐인데도 댓글부터 심상치 않았다. 연자를 고소하겠다는 말부터 입에 담기힘든 욕설까지 협박성 멘트가 줄 이었다.
최근에 만난 모 매체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 역시 전자담배의 위해 가능성을 다뤘다가 댓글 테러에 시달렸다. 전문가가 학술적인 근거로 위해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그에 상응하는 학술적인 반박 내지 옹호는 커녕 학계도 쉽게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자담배의 위해성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한 과정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복지부가 허둥지둥 전자담배 사용 중지 권고를 내렸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학술/과학적 근거는 실종되고 없었다. 일단 사용 중단 권고를 내리고 조사를 통해 후속 근거를 찾겠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셈이다.
전자담배의 태동 시기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최근에서야 전자담배가 유해성 이슈로 뜨겁지만 실제 전자담배가 처음 시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2003년.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형태의 전자담배로 대중화된 건 2013년부터다.
그간 전자담배는 독한 담배 연기가 없고 기존 담배보다 안전한 대체품으로 인식되면서 날개 돋힌 듯이 팔렸다. 2019년까지 6년이 흘렀지만 위해성을 평가하고 관리해야 할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통령이 옆구리를 찌르기 전까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반면 영국은 정부가 전자담배를 허용/금지 성분을 포함해 품질 관리를 해왔다.
익숙한 풍경이다. (전문성은 없지만) 힘있는 자의 한마디 말에 전문가 집단인 주무 부처가 휘둘리는 행태를 그간 많이 봐 왔다. 원전 폐기나 보 개방을 둘러싼 논란도 학술적 토론보다는 정치적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황당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두고 병사냐, 외인사냐를 판단하는 데 있어 재판부는 주치의에게 사망진단서를 잘못 기재한 책임을 물었다. 물론 이같은 결정 앞에 직접 진료한 '주치의'의 의견은 무력화됐다.
등 떠밀려 호들갑 떠는 전문가 집단의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실재보다 더 큰 우려를 느끼게 한다. 이것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과학적 근거로 말해야 하는 이유다. 당장 암에 걸릴 것같은 우려감을 키웠던 발사르탄 NDMA 검출 사태도 '한때의 소동'으로 끝나지 않았나. 위험의 과장이나 축소 모두 옳지 않다.
적어도 복지부와 식약처만큼은 과학과 근거로 움직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논리 대 논리, 이성 대 이성, 과학적 근거가 치열하게 맞대결하는 학술의 장은 실종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구시대의 망령이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는 건 아닐까. 누군가 말했다. 전문가 몰락의 시대를 넘어 이제 전문가 실종의 시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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