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대 의학과 2학년 염인지| 우리 학교는 의전원에 입학할 때, 신입생들이 각자의 포부를 담아 "나는 00한 의사가 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적는다. 나는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막연하게 실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력이 좋아지려면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의학과 2년 차인 지금은 실력을 갖출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위로해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멋모르고 썼던 진심을 다한다는 말은 내게 더욱더 깊은 의미가 돼가고 있다.
2학년에 올라오면 의사입문이라는 과목을 가장 먼저 배운다. 본격적인 임상 이론을 배우기 전에 아주 간단한 임상 술기와 더불어 환자에 대한 예의, 환자와의 공감 교육을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의 정서반응 이해", "적극적 경청과 공감 실습" 수업이었다. 표준화 환자를 모셔두고 의사와 환자 역할극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을 연습했다.
교실 앞에 한 명의 동기와 표준화 환자분이 마주 앉았다. 학생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가 환자분께 검사 결과 위암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표준화 환자는 절망하며 눈물을 보이셨다. 의사 역할을 맡은 동기는 어떻게든 치료를 잘해보자는 의지와 응원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이미 환자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의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슬픔이 감돌았다. 그제야 내가 배우는 것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을,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표현됐던 하나의 증례가 한 사람의 중대한 사연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암 재발을 걱정하는 환자, 검사 예약이 잘못돼 화가 난 환자 등 여러 사례에 대해 다루었으며 소규모로 조를 나누어 모두가 역할극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사례 역할극이 끝나면 표준화 환자분이 우리의 대응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이야기해주셨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동기가 환자와의 공감, 환자에 대한 경청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모든 환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청하려는 집중력이 극대화됐던 수업에서조차 소통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만큼 환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는 노력과 고찰이 평소에 부족했다는 증거였다. 이때 비로소 환자와 소통하며 마음의 위로도 건넬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다한다는 것은 감정적 공감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환자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얼마 전 배운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앓는 환자는 만 3세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한다. 게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와 격리돼 좁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지내게 된다.
의사로서 우리는 환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치료 방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삶을 위해 의사로서 어떤 노력을 할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때 나는 의사는 그저 실력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많은 시험을 보며 힘들게 배우는 의학은 결국 사람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국가고시를 통과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되는 의전원/의대의 특성상, 학생일 때 그저 시험공부에만 몰두하면 의사가 됐을 때 환자와 소통할 수 없는 의사, 마음이 없는 의사가 되기에 십상이다. 진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학생인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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