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해는 코로나19가 대단원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세상의 모든 이슈들을 덮어버렸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감염병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출, 퇴근길 교통정체가 사라진 풍경도, 북적거리던 거리가 갑자기 고요해진 것도, 지나가면서 쳐다본 극장 골목의 적막함도, 마스크 위로 보이는 불안하고도 의심스런 눈빛들이 낯설었던 것도 잠시일 뿐,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평생 이런 광경을 얼마나 만날까 싶을 정도의 상황을 병, 의원도 직면해야 했다. 병원 앞에 늘어선 선별진료소 천막과 컨테이너박스는 의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병, 의원은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면서 산더미 같은 폭설이 내리던 날의 조용한 진료실처럼 인적 없는 하루를 매일 매일 보내게 되었다.
환자가 없어 힘들어하면서도 목이 아프면서 기침하거나, 냄새를 못 맡거나, 목이 아프면서 열감이 있는 환자가 외래로 들어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 때면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일인 원장이 진료하는 의원에서 확진환자를 진료한다면 대부분 2주간의 자가격리와 병원폐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확진자의 이동 동선에 병원 이름이 공개되는 순간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지역사회에서는 두고두고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안감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열심히 홍보하는 대로 의심 환자가 선별진료소로 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에 좌절감도 느꼈다. 필자는 이비인후과 단독 개원이다 보니 내원하는 환자의 대부분은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담당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병원과 병원식구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여기에 대구시의사회의 다급한 소식들을 들을 때면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힘든 맘을 다독거리기 어려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초유의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시기에 고양시에서는 고양시의사회가 참여한 ‘고양안심카’라는 드라이브스루 선별검사소가 2월 26일에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심이 극을 달하던 초기 시절에 심욱섭 고양시 의사회장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덧붙여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역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의료진들도 기존의 검사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소독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문진과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이때 자동차를 이용한 드라이브스루 문진과 검사는 주저주저하는 지역사회와 의료진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고, 이를 통해서 조기 발견을 용이하게 함으로서 확산 위험성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동네의원으로 갈 수 있는 환자들을 고양안심카 선별검사소로 유도함으로서 의사회원들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만연한 두려움을 줄이면서 건강한 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기여를 하게 되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 되었지만, 73분의 회원들이 본인 병원도 문 닫고 선별진료소를 지켜줌으로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4월 20일까지 54일간 총 3,5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하면서 서로간의 동료의식도 고취할 수 있었고, 의사가 되어서 지역사회에 가슴 뭉클할만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감동이었다. 대구로 내려가지 못한 미안함도 한편으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역 최초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감염병으로 국가재난이 생길 경우에 일선에서 효율적이면서도 큰 가치창출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가의료정책을 만드는데 비중을 두고 고려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더불어 소중한 가치를 동료들과 함께 지켜냈다는 믿음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값진 소득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더 큰 위기상황에서도 동료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덕분으로 고양안심카 드라이브스루는 중단되었지만 상황이 안 좋아진다면 언제든지 다시 열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지금도 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소원이건데 ‘안심카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가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과거 코로나19가 있기 전의 일상생활로 하루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소망들이 다들 있다. 하지만 돌아간다고 한들 정말로 이전의 사회로 완벽하게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익숙해졌고, 호흡기 증상이 있어도 집에서 3일에서 4일간 경과를 지켜보다가 병원을 방문하는 일도 생활 속에 자리잡아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방문하던 일들이 줄어든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기에 과거 북적거리던 병원 풍경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주 만나던 코흘리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어딘가 많이 아프다고 걱정이 많은 할머니의 근심어린 눈빛도 조금은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앞으로 대면으로 이루어지던 모임들은 많이 줄어들 것 같고, 모임 뒤풀이로 빠지지 않던 잔 돌림도 많이 없어질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법한 큰 변화의 시대 한 가운데에서 ‘나는, 우리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지?’하는 추억을 안주거리 삼아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이 시기가 어떤 의료와 사회변화를 결론적으로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힘든 시간에 가족, 따뜻한 집 그리고 건강한 병원과 병원 식구들이 있어서 하늘에 감사하게 된다.
그동안 인류는 이종의 다른 동물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균에 대한 감염이 발생하였고, 생존위험의 역경을 뚫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험난한 과정을 겪을 때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과학 문명들을 꽃피워왔고 한 단계 도약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얻게 되는 과학의 발전은 많은 질병들을 해결하는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질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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