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갑 회장, 보건 영역에서 '의료'와 '복지'의 갈등 목격 "공보의, 공공의료 경험 최전선...이들 마음잡는 환경 만들어야"
3년의 공보의 생활 중 마지막 1년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회장으로서 꽉 채웠다. 코로나19까지 겹친 탓에 대공협 김형갑 회장에게 지난 1년은 '하얗게 불태웠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메디칼타임즈는 대공협 회장 선거에 돌입한 지난 2일 회장으로서 임기 끝, 공보의로서 전역을 눈앞에 둔 김형갑 회장을 직접 만나 지난 1년을 돌아봤다. 김 회장도 "진짜 힘들었다. 임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어 보람차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해 2월 말, 대구로 달려간 그는 두 달 동안 약 2000통의 전화를 받았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던 데다 공보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부터 전국 각지 공보의의 민원전화가 폭주한 것이다. 대구에 머물던 두 달 동안 잠도 하루에 3시간씩 밖에 자지 못했다.
이후에는 제천 생활치료센터, 전라남도 광양시, 세종시 등에서 다양한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이 같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김 회장은 코로나19를 "애증의 관계"라고 정의했다.
그는 "중증 환자 진료를 제외하고 검체검사, 역학조사 등 코로나19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본 것 같다"라며 "대공협 회장 신분으로 상시 연락해야 하는 목록에 질병관리청, 권익위원회 등이 추가됐다. 그런 만큼 공보의에게 일어날 수 있는 현안을 보다 다양하게 챙길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전대미문의 혼란 속에서 그는 '의료'와 '복지'가 충돌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각기 다른 지역사정이 겹쳐지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형갑 회장은 "의사들은 보건이라고 하면 의료의 영역에 가깝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정부는 복지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 같다"라며 "이러한 관점 차 때문에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의료의 관점으로 보면 선별검사는 유증상자나 역학적 관계자에 대해 검사(Test)해서 추적(Trace)하고 치료(Treat) 하는 소위 3T로 접근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 복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피검사자 간의 형평성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라며 "대표적으로 의견차를 보인 게 증상 유무와 상관없이 신속항원검사로 전수검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확진자가 단기간에 많이 발생하는 경우 시군민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전 군민 혹은 시민을 대상으로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하는 시군구가 있었다.
김 회장은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전수조사가 방역대책 상 합리적으로 필요한 경우는 적은데 전수조사 결정 자체도 무리가 있고 방식 자체도 잘못된 것"이라며 "막상 전수조사를 진행하여 보면 대다수의 시군민이 검사를 받는 것도 아니기에, 낭비 요소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비용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검사접근성에 차이가 나면서 형평성이 문제가 됐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검사비를 국비로 할 것인지, 지자체비로 할 것인지도 논란"이라며 "지자체마다 방침이 다르고, 같은 서울이라도 어느 검사소에 가느냐에 따라 비용 충당 주체가 다르다. 여기서 의료 형평성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검사를 받는 시민들은 무료라는 점에서 같으니 이런 갈등 상황을 모른다"라며 "의학에서도 의료접근성 등 형평성을 중요시하지만, 효과성이 없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자원이 부족했던 코로나19 환경에서 두 시선 사이의 갈등은 종종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혼란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다 보니 '유연한' 대응지침의 중요성을 특히 더 깨달았다고 했다. 대공협이 앞장서 코로나19 백서 제작에 나서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만 해도 신종플루, 메르스 이후 만들어진 지침대로 할려다 보니 대응이 헛도는 느낌이 있었다"라며 "미래 상황에 대비해 적응성 있고 유연한 대책을 세워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데 기존 가이드라인은 딱딱했다. 미래의 불확실함을 케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는 메르스와 전파경로는 비슷하지만 치사율과 감염력에 차이가 있다. 여기서 메르스 지침을 적용하려면 현장에서 맞지 않다"라며 "감염병의 주요 특성인 전파경로, 감염력, 치명률을 각각 고려해 병에 대해 알아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초기 대응책 등을 모아 현장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약 이행률 70~80%...정보화 사업 진행
코로나19 혼란 속에서 김형갑 회장은 대공협 회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등의 품을 들여 전국에 배치된 의사 공보의 근무 현황을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다빈도 민원을 정리해 가이드라인도 제작했다.
해마다 개최하던 학술대회도 열었고, 재정도 늘렸다. 내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업무 효율도 높였다.
공보의에게 주는 업무장려금, 각종 근로수당을 군의관과 형평성을 이유로 감액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정부에 "현재 상황에서는 적절치 않은 조치"라고 호소하며 막아냈다. 출산 후 2년 동안 하루에 2시간씩 쓸 수 있는 육아휴직도 챙길 수 있도록 중앙 정부 차원에서 안내했다. 코로나19 관련 수당도 인상했다.
김 회장은 "회장 선거에 나서면서 제시했던 공약 달성률이 70~80% 정도 된다"라며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감염병 백서 작업도 하려고 했지만 예산 확보 작업이 미뤄지면서 임기 내에는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공협이 수당 인상, 육아휴직 보장 등 공보의의 업무 환경 개선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더 받기위해서'라는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료에서 일 할 의사 인력을 확대하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면 공공의료 경험 최전선에 있는 공보의의 마음을 돌리면 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자체에서도 공보의를 3년 있다가 떠날 사람으로 생각하고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라며 "공무원으로서도, 전문가로서도 대우해 주지 않는 환경에 있다 보니 공공의료, 공중보건에 관심이 있던 공보의도 3년 뒤에는 그 마음을 접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사 공보의 숫자가 1900명 정도 되는데 이 중 매년 1%만 공공의료 영역에 남겨도 공공의료 인력 확충은 가능하다"라며 "의사 정원 확대 정책을 따로 만들 게 아니라 공공의료를 경험하고 있는 공보의의 처우를 개선하고 이들에게 권한을 더 많이 줘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형갑 회장의 임기는 2월로 끝이지만 새로운 집행부 구성이 늦어진 관계로 앞으로 한 달 동안 새로운 집행부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할 예정이다. 전역 후에는 유전역학 분야 연구를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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